[오늘의 에세이] 고오급 인력을 낭비하는 사회

wakeprince(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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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쓸 때든 글을 볼 때든 카페를 즐겨 찾는다. 적당한 소음이 끊임없이 나를 환기시키고, 틈틈이 사람들의 모습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오늘도 나는 카페의 기다란 테이블에 앉아 아메리카노와 함께 한 숨 긴 잠을 청하며, ‘그의 정의론’에 대하여 끄적이다가 그제 구매한 책을 꺼내 읽고 있다. 내 글을 쓰는 것도 즐겁지만, 역시 남의 글을 읽는 것이 마음도 편하고 유익하다.

방금은 불현듯 나의 집중력을 깨는 일이 일어났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여학생에게 한 남학생이 다가와 말을 걸며 내 관심을 빼앗아 간 것이다. 그와 그녀가 큰소리로 대화를 이어가는 통에 나는 좀처럼 내 독서에 집중할 수 없었다. 말소리가 어찌나 내 귀에 쏙쏙 박혀 오던지... 나는 왜이리 남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재미있는걸까.

이 둘은 아직 그렇게까지 가까운 사이는 아닌가보다. 그가 그녀에게 자신의 문학적 감수성과 외모, 지식 등을 자랑하고 있었다. 처음에 남자는 여자에게 영화 속 영어 대사를 줄줄 읊었다. 그렇게 감동받을만한 부분인가 싶지만, 어쨌든 그는 자신의 감상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리고나서 그는 자신의 큰 키와 복근 사진을 자랑하는데 이어,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공부가 얼마나 어려운지, 또 학습량이 얼마나 많은지를 피력했다. 말의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로스쿨에 다니고 있는 학생인 듯하다. 대놓고 자기 자랑을 하는 그의 모습에 괜스레 내가 다 낯부끄러워졌다. 남자로서 그 허세가 묘하게 공감되는 탓에 나 자신을 거울에 비춘 듯한 느낌이 드는 까닭일까.

하지만 그가 말하는 내용의 수준으로 보아 단순히 근거없는 허세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공대생으로 보이는 그녀에게 기본적인 법학의 원리와 최근 이슈가 되는 사건의 쟁점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꽤나 똑똑한 친구 같았다. 자부심에 찬 그의 법학적 소양을 듣고 있자니, 한 때 법학과 학부생이던 시절이 떠올라 은근한 흥이 올라왔다. 오랜만에 듣는 이론과 판례들이 거의 다 죽어가던 과거의 뇌신경들을 다시 활성화시킨 모양이었다. 내 눈은 책 위에 꽂혀 있었지만, 내 귀는 그의 말을 경청하며 마음 속으로 ‘그래, 그렇지, 맞아 맞아’를 외치고 있었다. 하마터면 입으로 “옳지”하고 소리를 낼 뻔했다.

그런데 정말 내가 입소리를 낼 뻔한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다만 그 소리는 “옳지”와 같은 긍정의 호응이 아닌 “신발, 강아지 조카 같은 소리하네”와 같은 분노의 표출이었을 터였다. 남자는 자신이 검사가 될 것이라며 신나게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그의 입에서 터진 그의 직업적 가치관이 내 화를 돋운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검사가 되면, 폭력사건은 받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람도 동물인데 폭행은 어느정도 용인해주어야 하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고작 그런 보잘것 없는 사건을 처리하는데 너무나 많은 고급 인력이 소모된단다. 검사, 판사까지 그런일에 신경써야 하냐며, 고급인력으로서 진짜 사건을 맡아 집중해야 한단다.

고급 인력... 고오급 인력... 대체 고급 인력이란 무엇이길래, 그는 본래 주어진 직업상의 역할까지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을까?

나는 그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이 길에서 뜬금없이 맞았을 때, 고급인력인 경찰이 ‘내가 고작 단순폭행을 봐야겠소? 원래 사람은 동물이오. 같이 맞서 싸우시오’라고 하면 어떨까?”

“당신이 감기에 걸렸을 때, 고급인력인 의사가 ‘내가 고작 고뿔을 봐야겠소? 원래 사람은 그렇소. 알아서 극복하시오’라고 하면 어떨까?”

“당신의 차가 갑자기 멈추어 섰을 때, 고급인력인 정비기사가 ‘내가 고작 시동꺼진 것을 봐야겠소? 원래 차가 시동꺼지는 일은 빈번하게 발생하오. 알아서 정비하시오’라고 하면 어떨까?”

우리의 삶은 대부분 사소한 일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처리하기 위해 각 직업이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 사회는 고급 인력을 쓸데없이 낭비하고 있는 사회가 아닌가. 그는 대체 공무원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저 본인의 출세와 명예를 위한 자리로 보는 것일까? 그로써 남을 하대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 혹은 검사의 자리를 자신의 재능과 노력이 보상받는 지위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처음 듣는 그 신박한 헛소리에 화가 나, 더 이상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을 수 없었다. 계속하여 분노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들어 갔다. 나는 결국 조용히 짐을 챙겨 자리를 옮겼다.

내가 이렇게 못마땅해 한들, 똑똑한 그는 검사가 되겠지. 아니면 좋게 이해하여 허세를 부리다보니 말이 헛나왔다고 이해하면 되려나. 천천히 마음을 달래며 자판을 두드리고 있지만, 씁쓸한 마음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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