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부르주아 전성시대이다.
프랑스혁명으로부터 우리 시대의 주인공이 된 부르주아 계층이 주도하여 만들어진 현대 경제 시스템의 부작용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전쟁 이후 약 60여 년에 걸친 경제 개혁을 통해서 많은 자본가가 생성되었고, 이들은 ‘재벌’이라는 특유의 명사까지 탄생시키며 우리나라를 선진국의 경제반열로 올려놓은 주인공이 되었다.
프롤레타리아의 역할을 했던 서민들이 그들을 위해 열심히 노동력을 제공해주면서 그들은 자본을 축적해왔고, 그 축적된 자본을 또 열심히 생산능력 확충에 사용함으로써 더욱 거대한 자본 철옹성을 지었다. 물론 부르주아들로 인해서 한강의 기적이라는 칭찬도 들어가며 산업이 크게 발전했고, 삶에 필수적인 의식주를 당시와 비교했을 때 비교도 안될 정도로 많이 개선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를 대변하는 우리의 마음속에 여전히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는데, 우리 주위에 회사원이나 학생들이 처해한상황을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자, 주위를 둘러보자. 나 자신부터도 이미 시스템에 회의를 가지고 있고, 하나의 부속품 역할 밖에 안되는 것은 회사원 중 99.99%는 인식하고 있는 문제의식이다. 다만, 표출하지 않을 뿐이다. 왜? 내가 문제의식을 표출해봤자 바뀌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정교하게 짜인 틀 안에 갇혀 이전의 물레방아 대신 반 자동화 된 페달을 열심히 돌리고 있는 현대식 프롤레타리아이니까.
부르주아 계층은 프롤레타리아가 아직은 필요하다. 여기서 ‘아직은’에 주목해야 한다. 최근 불어닥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개인적으로는 산업혁명의 자동화 버전이기 때문에 2차 산업혁명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수십 년 후에는 프롤레타리아가 필요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프롤레타리아를 같이 끌고 가야 하기 때문에 밑밥을 던진다. 즉, 매년 조금씩이나마 성장하는 경제를 구현하고, 이를 당근으로 우리에게 희망 고문을 실시한다. 이러면서 우리는 살아왔다. 잘 생각해 보시라. 이제 우리 의 평균 연봉은 인플레이션율에 간당간당하는 수준으로 상승하고 있다. 이 상승 폭이 그나마 그들이 우리에게 던져줄 수 있는 유일한 당근이다.
자, 그럼 여기서 한번 물어보고 싶다.
그 당근이 아직도 아주 맛있고 먹고 싶어 하는 동경의 대상인가?
혹자는 그리고 나 또한 이런 물음을 스스로 던지며 살았지만, 결론은 같았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세상을 나 혼자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적응만이 살길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지금도 아침에 눈 비비고 일어나서 출근하시는 게 아닌가? 그나마 우리는 이런 ‘생산적이지만 생산적이지도 않은’ 활동을 60세 전후까지 밖에 할 수 없다. 버림받는 것이다. 부르주아에게 페달을 돌릴 수 없는 프롤레타리아는 필요 없는 존재이다.
그나마, 일자리도 구하지 못해 룸펜 프롤레타리아로 전략한 이들은 어떻게 하나? 그나마 최저임금이라도 올려주면서 정부에서 힘겹게 막고 있지만, 최근 치솟고 있는 청년 실업률을 보아하니 이미 둑에 금이 간 모습이다.
우리는 자각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봐야 한다. 개인적으로 희망의 씨앗은 뿌려졌다고 생각한다. 우리 한 사람의 힘은 미약하나 모이면 강해진다. 최근 기업들을 분석하면서 느끼는 것은 시가총액 상위에 올라오고 있는 기업 중에 최근 10년간 유독 소비자의 취향에 좌지우지되는 기업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네이버 등 이 대표적일 것이다. 우리가 만약 구글이나 네이버를 사용하지 않고 우리도 모르게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키면 실행되는 zum.com을 모두 합심해 사용한다고 해보자. 그럼 이들 업체의 벨류에이션은 0으로 수렴하게 될 것이다. 최근 살펴보았던 스포티파이도 그렇다. 이익도 없는 회사의 시가총액이 20조가 넘는다. 이 엄청난 가치는 스포티파이를 사용하는 유저가 만들어낸 것이다. 만약 약 7,100만명의 프리미엄 유저가 멜론 서비스를 가입한다고 가정한다면, 멜론의 주가는 10배 이상 상승할 것이다.
산업의 구조가 2차 산업에서 3차 산업인 서비스업으로 발전함에 따라 소비자의 힘이 중요해졌다. 우리 개개인의 힘은 미약하나 뭉치면 강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문제는 이 거대한 힘을 묶을 수 있는 수단이 없었으나, 블락체인 기술은 기술적 기반을 제공했다. 지금은 초기이고, 일부 ‘한탕주의’의 시각들로 보는 사람들로 인해 그 가치가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부르주아와 의 격차가 점차 벌어지게 되면 프롤레타리아는 스스로 처한 상황이 1789년 이전 프랑스의 농노계층과 비슷하다고 느끼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스팀잇에서 글을 쓰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선구자일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회의적인 사회 분위기를 무릅쓰고 글을 올린다는 것은 프롤레타리아가 가져야 하는 문제의식을 자각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또한, 우리는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거대 자본가들이 거둬가던 돈을 우리 스스로 누릴 수 있는 플랫폼에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왜 내가 힘들게 일한 것을 부르주아 계층에게 가져다줘야 하나? 내 자생력을 키우는데 매일, 24시간을 사용해도 우리가 살아야 할 날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벅찬데 말이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의 한 문구를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고 싶다.
임금노동이 노동자들에게 알량한 재산이라도 만들어 주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임금노동은 자본을 만든다. 그것은 임금노동자를 착취하는 재산이며, 새로운 착취를 위한 임금노동의 새로운 공급 없이는 증대될 수 없는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