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하다. 도대체 불쌍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몇 차례의 시험을 통과해야지 대기업에 입성할 수 있는 걸까?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본 시험만도 수백 차례일 텐데 이제는 기업마다 자기들 나름대로 이름도 멋지게 붙인 인적성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현대차그룹의 HMAT를 보니 언어이해, 논리판단, 자료해석, 정보추론, 공간지각 과목이 포함되어있는데, 과목 이름만 들으면 IQ테스트로 착각할 정도다. LG그룹의 인적성 검사는 직업 적합성 테스트와 인성검사인 LG웨이핏 테스트로 나뉜다. 뉴스를 보니 LG 시험 중 도형 추리와 도식적 추리가 매우 악명높은 시험이라고 한다.
과연 도형 추리를 잘하고 도식적 추리에 뛰어나면 정말 일을 잘하는 사람인 걸까? 왜? 아예 멘사 회원들을 뽑거나, 입사지원서에 IQ란을 추가해 서류면접 과정에서 필터링하면 쉽게 해결되는 걸 구태여 인적성시험까지 볼까?
참 대단하다. 고시 아닌 고시를 또 준비해야 하는 취준생이 얼마나 괴로울지 대기업들 인적성 평가 이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필자가 사회경험이 수십 년 되지는 않지만, 대략 회사들이 어떻게 굴러가고 내부에서 어떤 정치판이 난무하는지 알고 있다. 이런 정글과 같은 회사생활에서 개인적으로 매년 어려워지고 취준생을 혼란에만 빠트리는 인적성평가가 얼마나 변별력을 갖추고 있는지 매우 큰 의문이다.
만약 응시 분야가 매우 미세한 부품 등을 설계하는 파트에 근무한다면 공간지각능력이 중요할 것이지만, 개인적으로 고도의 공간지각능력이 필요한 인원은 전체 대기업 인원의 0.01%도 안 될 것이다. 근데 왜 모든 응시생이 공간지각능력을 평가받기 위해서 도형 뒤에 숨겨진 도형의 숫자를 세어야만 하는가?
어차피 회사 들어가면 배속된 팀 윗사람의 입맛에 맞게 보고서 양식부터 해서 모든 것을 바꿔야 하고 새로 배워야 하는데 왜 언어이해, 논리판단, 자료해석이 필요한가? 나도 자료분석 꽤 해야 하는 회사들에 있어 봤지만, 고등학교만 나오면 읽을 수 있는 자료를 들이대며 잣대로 꼭 제시할 필요가 있을까?
도대체 무엇을 위한 시험인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필자도 취업을 준비하느라 몸과 마음이 피폐했던 시절이 있다. 정말 기업에서 오는 의미 없는 한 두 줄의 이메일을 기다리며 밤낮을 지새웠다. 당시에도 인적성 평가를 가서 본적이 있는데, 이딴 문제들로 사람을 평가하려는 회사도 문제고, 이런 문제들을 풀기 위해 웬만한 사전보다 더 두꺼운 책들을 안고 씨름하고 있는 취준생들도 너무나 불쌍했다.
필자의 경험상 머리가 똑똑해서 회사 일을 잘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당연하다. 하지만, 머리가 좀 덜 똑똑해도 이 보다 회사일을 더 잘하는 사람이 더더욱 많았다. 오히려 내가 회사생활하면서 정말 스마트하게 일처리를 딱딱 했던 분들은 여고를 나와 취업전선에 바로 뛰어들었던 분들이 더 많았다. 왠만한 대학/대학원 졸업해서 배에 힘주고 다니셨던 분들보다 자기분야에 있어서 명확히 일을 잘했다.
회사 생활은 소수의 고도 전문직을 제외하고 입사 후에 모든 것을 다시 배워야한다. 대학에서 아무리 높은 학점을 얻고 나왔더라도, 회사에서 원하는 포맷의 옷을 입어야 한다. 대기업에 다니시거나 다니셨던 분들은 모두 아시겠지만, 회사는 직원들이 자신의 완벽한 ‘바탕’이 되어주길 원한다. 그럼 왜 회사가 인적성 시험을 볼까? 답은 너무 쉽다. 직원이 부품화되었을 때 동요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다른 생각하지 않고 주어진 일만 해줄 수 있는 인성을 갖췄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내가 말이 심했나?
심지어 기분 나쁜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근데 뭐 어쩔 수 있나? 이게 현실인걸. 제 아무리 AI가 태동하고 있다고해도 모든 것의 바탕은 사람이다. 왜 사람의 가치를 무시하는가? 왜 우리가 저딴 인적성 시험따위를 기준으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난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PS. 취준생 또는 앞으로 사회 생활하실 모든 분 힘내시기 바랍니다. 제 글이 너무 비관적으로 비칠지 몰라 노파심에 말씀드리면 금수저가 아닌이상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스킬이나 경제가 돌아가는 원리, 사회적 인간관계, 초기 자본을 모으기 위해서는 회사에 다녀보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또한, 대기업에 취직이 안 되신다면 중소기업도 적극적으로 고려해보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배우는 것은 중소기업이 더욱 많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