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많이 풀렸으나 몸은 도리어 떨렸다.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 나 자신도 하나의 생명체라는 사실을 망각했는데, 비보를 접하면서 모든 평행선이 산산이 조각났다.
친하진 않았지만, 얼굴 보며 인사했었던 후배 한 명이 암으로 인해 사경을 헤매고 있단다. 이미 몇 년 전에 암 판정을 받고 힘겨운 사투 끝에 이겨냈는데, 다시 의식을 잃고 쓰러져서 장례식을 준비한다는 메시지를 받으며 머릿속에 혼탁해졌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식인가 그 메시지를 몇 번 훑어봐도 내 시신경을 타고 들어온 짤막한 몇 줄은 변하지 않았다. 졸업 이후 꿈속에 갇혀 사느라고 얼굴조차 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런 소식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내 동료가 한 명 먼저 간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마음 한구석이 아련해졌다.
아직 청청한 30대이건만, 어찌 그렇게 쉽게 유명을 달리한단 말인가. 전쟁이 사라지고, 의료의 발달로 인해 ‘죽음'이라는 조금은 멀리 떨어져 있을 줄만 알았던 단어가 이렇게 내게 잔인하게 돌아올 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어차피 태어나면 다 가는 거라고 자신을 위로해보았지만, 오후 내내 생명에 대한 부질 함은 나를 괴로움으로 가득한 낭떠러지로 내몰았다.
죽음은 생각보다 내 가까이에 있었다는 것을, 왜 나는 망각하고 살았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하루하루 쳇바퀴와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는 죄책감과 더불어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분노가 머릿속에 차오르는 그 순간, 지하철을 타기 위해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여 기다리는 한 남자를 보았다.
40줄 초반 정도 되었을까? 길게 늘어뜨린 머리, 약간은 마른 듯한 기다란 얼굴에 있는 초점이 명확하지 않은 눈. 지하철에서 내리면서 짧은 순간에 우리는 서로 그렇게 지나쳤다. 죽음에 대한 여러 생각을 머릿속에서 빼내지 못한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순간, 그의 뒷모습과 다시 한번 마주쳤다. 지하철이 꽉 차지 않았는데도 뒤에 서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지하철을 타지 못했던 그는 약간의 씁쓸함을 애써 감추려는 듯이 머리를 살짝 흔들며 다시 지하철을 타기 위해 전열을 갖췄다. 물론 약간은 힘이 빠져버린 어깨와 함께. 나는 이분에게서 어떤 것을 느꼈던 걸까. 그의 약간은 갈색이었던 찰나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잊히지 않는다.
'바쁜 삶'이라는 적절히 둘러대기 좋은 핑계 속에서 온건한 몸과 깨어있음에 대한 소중함을 망각하면서 살고 있음을 분명히 느꼈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인생 여행길에서 잠깐 간이역에 내려 부모를 잃고 울고 있는 꼬마와 같다. 아무도 길을 가르쳐 주지 않는데, 이제 다시 열차에는 타야만 하는, 그 열차가 어디로 가는지 몰라 공포에 휩싸여 있는 한 명의 불쌍한 꼬마처럼 말이다.
힘겹게 감정을 추스르고 열차에 가까스로 다시 오르니 머릿속에서 삼자대면이 시작되었다. 이제 막 이쁜 하늘나라로 떠날 준비를 하는 후배와 휠체어에 몸을 지탱에 나를 넌지시 응시하고 있는 아저씨와 다시 어른의 몸으로 바뀌어버린 나와. 그대들에게 한 마디조차 드릴 수 있는 자격이 전혀 없는 나는 물끄러미 눈물만 흘리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이것이 내가 할 수 있고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