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우리나라가 광복 되기전 이차세계대전 말기 국민학교 저학년때 겪었던일을 회상 해 보기로 한다
나는 아홉살때 국민 학교에 입학했는 데 일학년때는 학교생활에 대한 기억이 별로 나지않는다
이삼학년이 되고부터의 기억이 가끔 새로워질때가 있다
첫째로꼽는것은 아침에 상급생 집에 모여서 등교 하였고 또한 비료로 쓴다며 풀을뜯어 학교에 가져 가야 했고 그리고 등교때는 쇠붙이도 가져가야 했다
어느때는 첫시간 공부를 시작도 전에 한반 전체 아이들을 동원해서. 쇠붙이를 주우러 길거리로 자주 나가기도 했다
또기억나는 것은 매일 군대훈련같은 분열식이 아침 조회시간에 이루어 졌다 어린아이들에겐 견디기 어려운 훈련이었다
또새벽에 학교에 모여 신사참배를 했는데 한달에 몇번인지 기억 나지 않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는것이 어린아이 들에겐 너무 힘든 일이였다
해방이 돼서 가장좋았던 것이 위에 대충열거한 사항을
하지않아도 되는것이였다.
또. 기억나는 것은 요사이 한일간 분쟁의. 문제로. 비화된 징용문제에 대한 기억도 있다
군대에 징집 연령이 지난 젊은 사람이 대상이였는데
징용에 붙들려가면 다시는 집에 올수 없다 생각에
징용에 징집 명령을 받은 가족들은 슬픔 에 빠져야 했다 우리 형부는 피하기 위해서 만주로 도망갔었다
그당시 센닝바리(천명의바늘)라는 요식행위가 있었는데 군대나 징용 징집 받은 가족들이 거리에 나와서
무명수건에 바늘에 실을 몇번돌려 제자리에 다시꽂으면 작은 점 같은것이 되는데 이점을 천명의정성으로
만들어 지면 살아 돌아 온다 하여 어린 나도 동참한것이 여러번이였다 지금 생각 하니 일본인들의 풍습인것같다
요사이. 어느대학교수가 위안부 이야기를사실과 다르게
말하는것을 보고 내가 겪은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때 어른들 말씀을 들으면 아무게집 딸은 위안부로
붙들려갈까봐 열세살 단발머러리를 달비(가발)로
쪽을찌고 혼례를 치뤘다는말을 들었다 우리 어머니는
일본사람을 가리켜 언제나 왜놈이라 하셨다
벌거벗은몸에 훈도시라는 헌겁으로 부끄러운 부분만
가리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은 우리네 풍습으론
분명 야만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