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낯선 곳을 방문한다는 의미 이상을 가진다.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겠지만, 사실 그런 단순한 호기심과 경험을 위해서만 여행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혼자서 하는 여행이 주는 의미는 그런 점에 있어서 다소 특별하다. 여행의 계획도 일정도, 모두 자유롭다.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가보고, 머물고 싶으면 언제까지나 머무를 수 있다.
'자 여기서 30분입니다. 저쪽에서 사진 찍으시면 좋습니다. 시간맞춰 여기서 모이겠습니다'
짐짝 마냥 버스에 우르를 실려다니는 일명 패키지 여행에서 흔히 듣는 대사다. 30분이라니... 무엇을 보았는지 음미해볼 새도 없이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것인지도 모르는 사진에 얼굴을 드리밀기 바쁘다. 그 멋진 풍광을 뒷통수로 보다가 온다. 돌아와서 사진을 정리하다보면 의례껏 '여기 어디야? 우리 여기도 갔었어?' 그야말로 유머가 아닐른지.
미술관에 가보면 그림 한장을 30분 이상 우두커니 쳐다보고 계신 분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그 작품을 만든이의 마음을 스쳐지나가는 눈길로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짧게는 몇백년 길게는 몇억년에 걸쳐 만들어진 작품을 보는데 5분도 안되는 시간으로 스쳐지나며 마음에 감상을 담을 수 있을까.
패키지 여행이 나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름의 효율성도 있고,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우수하다. 꼭 그곳에 가보는 것이 목적이고,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고자 한다면 좋은 상품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여행자의 마음'이다. 여행 자체가 목적이라기 보다는 여행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하는 것 그것이 여행자의 마음일 것이다. 이 곳 라오스로 떠나올때 내 마음 한켠에는 도피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현실도피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내게 닥쳐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하는 바람 같은 것이다.
장기를 두고 있을 때는 잘 모르지만, 훈수를 두면 수가 귀신같이 잘 보이는 것 처럼, 남의 인생사는 그렇게 잘 보이는데, 정작 내가 살고 있는 인생에는 묘수가 안보인다. 훈수꾼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 보려면, 익숙하지 않은 공간, 방해받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이곳 루앙프라방에 도착해서 느릿느릿 구 도시를 목적없이 걸으면서 독특한 느낌을 받았다. 아시아의 대부분의 나라를 가본 나로서는 사실 루앙프라방에 대한 특별한 기대는 없었다. 그냥 조금 더 뭐가 많이 없는 흔한 동남아의 한도시겠거니 했었다.
그런데 이 도시는 좀 특이하다. 도시가 단정하고 반듯하다. 황금불상의 도시 라는 뜻의 루앙프라방이어서 그런 것인지, 도시 전체가 사원 같다. 본격적인 휴양을 위한 도시, 환락의 도시. 동남아에는 흔히 이런 도시들이 많고, 기대치도 거기에 있다. 그런데, 루앙프라방은 휴양을 할 수 있는 곳도 아니고, 그렇다고 환락은 더더욱 아니다.
거리를 걷다보면 조용히 해달라, 스님들에게 예의를 갖추어라 하는 표지판을 흔히 볼 수 있다. 심지어 강이 잘보이는 곳에 있는 바겸 카페의 테이블에는
'자연을 충분히 즐기시라고 저희 카페는 와이파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자연경관과 함께하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용히 대화해주세요. 카페내에서는 금연입니다.'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이 도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구가 아닐까 생각한다.
거리를 걷다보면 담배꽁초하나 떨어져 있지 않은 깨끗한 거리가 신기한데, 좀 지나면 왜 그런지 알게 된다. 길에 면해있는 가게 혹은 집의 사람들이 시간만 나면 거리를 청소한다. 기다란 빗자루로 쓱쓱 길을 쓸어낸다. 자기땅이 아닌 도로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쓱쓱 쓸어서 깨끗하게 만들어 놓는다. 나무가 잘자라는 기후 탓에 키높게 자란 나무에서 쉴새없이 떨어지는 나뭇잎을 치우는 것이 습관이 되서 그런가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청소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길을 걷다보면, 좋은 풍광을 마주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낯선 단정함과 엄숙함 그렇지만 그안에 숨은 포근함 때문에 좀 딱딱해져있던 마음이 금새 말랑해지기 시작하고 휴양하러 왔으니 무조건 그럴듯하게 쉬어야 해 라는 휴양의 강박이 어느 순간 사라진다.
강요하지 않고 보여주는 그들 특유의 따듯하고 여유로운 생활모습에 '이렇게 살면 행복하겠구나' 생각했다면, 이미 마음의 휴식은 시작된 것이다.
이 도시에서 시간을 보낸지 만 하루만에 '스팀잇 하면서 여기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의 내 글솜씨로는 머 언감생심 생계유지가 어려울 터이지만, 새로운 꿈을 꾸게 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 지는 것이 이게 힐링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