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에게 소개받은 이 책은 읽는 내내 참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든 책이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은 존엄함을 가지는가? 나는 경우에 따라 다르게 본다. 나와 같은 인간을 만들어서 냉동보관하고 있다면 그 냉동인간은 내가 아픈 곳을 교체할 때 쓰는 부품의 집합체라고 본다.
그러나 이 소설에 나오는 실험체 처럼 여기저기 다니고 숨쉬고 보고 먹고 느끼는 상황이라면 더 이상 실험체가 아니라 하나의 존엄한 인간이라 본다.
'아일랜드'라는 영화를 보면 부유한 고객들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 복제인간을 만들고 희생시킨다. 그 영화에 나오는 복제인간들은 서로 보고 느끼고 만지고 듣는다. 그들은 이미 대체가 불가능해졌다.
나는 존엄함의 핵심을 누구도 그를 대신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치료를 위해 냉동보관된 복제인간은 얼마든지 대체가능하다. 폐기하고 만들면 그만이다. 그러나 소설 속 실험체는 다시 실험체를 만든다고 해도 둘은 같지 않다. 이미 세상과 교감하면서 그는 존엄해졌다. 그가 저지른 살인이라는 범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은 별도로 판단한다고 보더라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지적욕망 때문에 만든 실험체의 존엄성을 외면한 프랑켄슈타인은 한 인격체에 대한 큰 책임을 회피한 인물이다. 나는 실험체를 외면하고 도리어 증오한 프랑켄슈타인에게 화가 난다.외모로 그 사람의 행동을 평가하는 것은 옳은가? 한 때 외모로 상대방을 평가하는 것은 외모지상주의로 비판되다가 이제 외모는 경쟁력으로서 갖추어야할 하나의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소설 속에 실험체의 선의와 호의는 외모로 인해 악의로 받아들여졌다. 소설작가는 외모로 그 사람의 행위를 판단하면 안된다는 메시지를 계속 던지고 있다. 나 역시 동의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라도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내 몸을 만진다면 기분이 나쁘다!!!
실험체는 아이를 물에서 구했지만 이를 본 그의 부모는 실험체에게 총을 쏘았다.
장님인 노인에게 가족으로 거두어줄 것을 정중하게 요구했지만 이를 본 그의 자녀들은 몽둥이로 실험체를 난타했다.
소설 속에서 실험체가 한 모든 행위는 그의 외모에 의해 나쁘게 판단되어졌다.
그러다 나는 실험체의 흉한 얼굴이 아니라 일반사람과 다른 얼굴에 초점을 맞추었고, 행동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배척과 두려움으로 초점을 옮겼다. 낯선 것에 대한 배척과 두려움.
이 소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배타성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고 있다. 배타성이 본능이든 학습에 의한 것이든 상관없이 일단 대상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 한 사람이라도 실험체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어주고 공감해주었다면, 그가 인간에 대한 분노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는 지경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실험체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사람들과 자신의 사연을 설명하는 것이 서툴었던 실험체의 불협화음이 안타까웠다.
우리 각각은 대체될 수 없는 존엄한 존재이다. 우리는 존엄한 존재이기에 다들 다르다. 따라서 판단하기 전에 배척하기 전에 그들의 이야기를 먼저 듣는 자세를 가지자.
프랑켄슈타인의 실수를 우리는 범하지 말자.
- "프랑켄슈타인"에서 일부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