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지구 반대편 누군가, 천년 후의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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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 이거 누가 시켜가 이러는 거 아이지예?]
[하모. 세상에 누가 시킨데이. 지새끼 죽으라고 등 떠미는 애비가 어딨겠노?]
[아부지, 이거 진짜 개죽음 아니지예?]
[장난하나? 니는 뜬데이. 뜬데이. 반드시 뜬데이. 화랑관창 역사에 기리 남으리 관창아.
지금 죽으면 천년을 산데이]

영화 ‘황산벌’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황산벌은 소소하게 재밌는 영화였고 기대이상이었지만 기립박수를 치며 눈물을 훔친다거나 웃다가 자지러질 만큼 유쾌한 영화는 아니었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웹서핑 도중 과학 게시물을 보고 잠자리에 누운 싱숭생숭한 중학생과 자신의 전공을 거창한 말로 정당화 하려는 건축학도의 이야기다.
그리고 물론 둘은 동일 인물이다.

#1
중학생은 얼마 전에 집에 설치된 인터넷에 벌써 적응했다. 그는 중2병을 심하게 앓는 중이었고 최근 자라난 머리 속 공간을 학교공부로 채울 만큼 건실한 청년은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인터넷은 오그라드는 자아를 배출하고 흥미롭고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는 훌륭한 창구였다. 그날 저녁에도 그는 그 끝없이 거대한 바다 속을 헤엄치며 검증되지 않은 잡다한 정보들을 흡습하고 있다.
그는 그 난잡한 게시판 속에서 우연히 ‘만년 후의 지구’ 라는 게시글을 보게 된다.
게시글은 만년 후의 지구를 상상한 SF 그림들이었는데, 이미 인류는 멸종한 이후였고, 지구의 생태계가 어떻게 변화하며 어떤 기괴한 생명체들이 생겨나서 지구를 향유하는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어느 인간 하나 조차도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먼 훗날, 찰턴헤스턴*이 우주를 떠돌다가 불시착 한다 해도 이곳이 지구라고 알아차리지 않을 만큼 이질감이 드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당연히 근거라고는 실존하는지 조차 알 수 없는 난해한 이름을 가진 미래학자들의 설명이 전부였지만 인터넷을 접한 지 그리 오래지 않은 중학생에겐 그나마도 어마어마한 설득력이 있다고 느껴졌다.
자리에 누운 중학생은 잠들기 직전 그 공상들이 떠오르고, 문득 무서워진다. 자신이 영원히 살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자신이 죽은 뒤 자기가 그렇게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과연 지금까지 과거에 살아온 인간들은 대부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한다. 물론 운 좋게 후세가 번창하여 후손을 오래도록 남기는 것으로도 훌륭한 영생일 수 있지만, 누가 자신의 조상 같은 걸 기억하나. 사후에 대부분의 지인들마저 죽고 나면, 결국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그거야 말로 존재가 사라지는 것 아닌가. 그것은 사춘기의 중학생에겐 죽음보다도 한 단계 더 무섭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급기야 그 난잡한 공상 속에 얼마 전에 보았던 영화 속의 대사가 떠오르고야 만 것이다.
‘관창아, 지금 죽으면 천년을 산데이’
그래 천년이라도 살아보자. 그 정도 살아보게 되면, 그때가 되면 지워짐을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무엇보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머니까, 일단은 천년을 살아보자!
물론 자기 전에 했던 이 거창한 결심은 그 이후에 반복되는 무수한 다른 결심들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창고 깊숙한 곳에 안치된 채 잊혀 진다.

#2
건축학도는 꿈에 부푼 새파란 가슴을 안고 캠퍼스에 입성한다.
자신의 20년간의 인생동안 하기 싫었지만 꾸역꾸역 행했던 거의 모든 것들(거의 공부로 대치가능하다)은 바로 이곳에 오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제 1차 베이스캠프에 도달했다고 확신했다.

다른 학과는 어떤지 모르지만 건축학과는 특히 자신의 전공에 대해서 지나치게 신성시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예술과 공학의 중간에 위치한 문명을 이끌어 온 선지자로서, 인류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을 공급하면서 인간의 삶에 가장 크게 영향을 준다고 믿는다. 그들이 생각하는 건축가는 수많은 인부들을 통솔해서 거대한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 리더이고 그들의 모든 부분들을 넓게 이해하는 통섭형 인재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1학년 첫 수업에서 교수가 왜 건축학을 선택했냐고 묻는 질문에 거창한 사명감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 건축학도는 중학생 시절 잠시 상상했다 잊어버렸던 공상과 결심을 떠올렸고 이를 멋들어지게 조합하여 ‘천년을 살다’라는 주제로 전공 선택의 변을 발표할 수 있었다. 자부심이 대단했던 교수는 박수를 칠 정도로 꽤나 흡족해 했다.
그 곳에서 그는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자신의 일생일대의 사랑(이라고 잠시 착각되는 누군가)를 만난다. 서로 너무나도 다른 부모님 아래에서 자라면서 진실 된 사랑은 공통점에서 온다고 믿어왔던 그는 수많은 부분에서 자신과 일치하는 점이 상당히 많은 후배를 만났을 때 (실은 우연한 몇 가지였지만 이런 판단의 근거들은 과장되게 마련이다.)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아이의 꿈이 지구반대편의 누군가가 자신에게 영향 받는 것이라는 걸 들었을 때
그는 더 이상 그녀가 ‘The one’ 이라는 자신의 확신에 저항할 동력을 잃어버린다.
그는 그녀와 자신의 꿈을 동일시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origin of love**의 주인공들처럼 원래는 등이 붙어 있던 하나의 존재였다고 믿었기에.
그래서 그는 천년을 사는 것과 더불어 지구 반대편에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겠다는 어마어마한 야망에 불타올랐다. (이것은 흡사 비틀즈가 아닌가..)
더군다나 건축학이라는 전공은 그 꿈의 혈관에 혈액을 공급하는 훌륭한 심장이 되어주었다. 1학년 때 배우는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실제로 그 두 가지 꿈을 이룬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상상하며 자신의 마음속에 거대한 자신감을 품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당연히 그녀와의 인연은 그리 길지 않았다. 더 특별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하게 느껴졌던 인연은, 만났던 계기가 평범했던 만큼이나 헤어짐도 평범했다. 그리고 무너진 것 같던 세상이 균열조차 가지 않았다는 걸 알기까지는 남들보다 더욱 짧았다.
건축이라는 분야와의 결별은 그것보다 훨씬 쉬웠는데, 군대를 다녀오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그는 자신이 이 일에 엄청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사실 몇몇 부분에선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수준이었다) 남들보다 이 일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며(세상엔 이 일에 미쳐 인생을 바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이 일은 그리 전도유망한 직종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새내기 때부터 알던 일이긴 했지만 그때는 로망이 현실을 가리고 있었다.)

결국 평범한 회사원이 된 그에게도 그때의 이상은 여전히 매력적인 존재다. 그는 여전히 사람들에 대한 영향을 꿈꾼다. 그의 깊은 곳에는 아직 다 타지 않은 오만함과 묵혀둔 야망이 굴러다닌다. 거대한 꿈은 안이 텅 비어버리더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든 그 안이 현실로 가득 차는 날이 있을 거라고 믿으며 구석에 배치되어 있다.

#3
그래서 비비안 마이어의 이야기가, 그를 두근거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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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창고세일에서 잡동사니를 모으는 것이 취미인 남자가 어느 날 방대한 양의 필름 통을 구입하게 되면서 시작한다. 오랜 세월동안 창고세일을 전전했던 그는 그 물건들에게 왠지 모를 가능성을 느끼고 그 필름들을 현상하고 인화하게 되는데 한 장 한 장이 상을 들어낼 때마다 그 사진들이 보여주는 오묘한 느낌에 매료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사진들은 그 예술성을 인정받고 퍼져나가 평론가들의 관심을 사고, 미국 전역을 돌며 전시회를 열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둔다. 사람들은 그 훌륭한 사진들의 작가에 대해 궁금해 했고 처음 비비안 마이어의 필름을 발견했던 남자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평생을 조용히 살아온 유모였던 비비안 마이어의 인생을 찾아내고야 만다. 우연히 필름이 발견되고 인정받아 결국 숨겨져 있던 예술가의 삶으로 이어지는 과정. 이 일련의 놀라운 이야기는 필름을 발견한 바로 그 남자의 손에서 결국 잘 제련된 다큐멘터리로 탄생했다.

비비안 마이어는 평생을 유모로 살아왔고 죽기 전까지 자신의 예술성을 단지 취미로 간직했다. 영원히 묻힐 뻔 했던 그녀의 재능은 어느 창고세일에서 벌어진 기적 같은 우연의 결과로 우리에게 올 수 있었다. 그녀가 돌봤던 아이들처럼, 그녀의 작품들도 결국 사라지지 않고 남아 우리가 만끽하고 기억할 수 있는 훌륭한 그녀의 흔적들이 되어주었다.

#4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가 죽은 후에도 잊혀 지지 않는 로망을 보여줬다면
같은 해에 만난 또 [서칭 포 슈가맨]은 자신이 닿지 못한 곳에서 벌어지는 멋진 일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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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케이프타운에는 전설로 남아있는 락 앨범이 하나 있는데, 알 수 없는 루트로 우연히 넘어온 불법복제 판 하나가 입소문을 타고 퍼지기 시작해서 그 일대를 선풍적인 인기로 휩쓴다. 붐의 근원이 불법복제 판이었기에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고. 이 베일에 싸인 락스타에 대해 전설 같은 소문들만 무성하게 퍼지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의 흥미로운 점은, 사실 이 앨범의 주인공인 로드리게즈라는 남자는 이런 사실을 추호도 모른 채 지구 반대편의 미국에서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평범한 남자가 지구 어딘가에서 전설적인 락스타로 추앙받고 있는 이 놀라운 사실을 양 쪽 어디에서도 알지 못한 채 몇 십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던 중 항상 이 앨범에 애착을 갖고 있던 케이프타운의 한 음반사 직원이 이 락스타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한다. 천신만고 끝에 로드리게즈의 가족과 연락이 닿아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망설이지 않고 이 미스테리한 락스타를 찾아가 그의 인생에 가장 놀라운 소식을 전하고 로드리게즈는 흔쾌히 자신을 추앙하는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을 위해 공연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케이프 타운의 사람들은 생사도 알지 못했던 자신들의 뮤즈이자 페르소나가 케이프타운에서 공연한다는 소식에 고조되고, 홀을 가득 매운 체 그와의 첫 만남을 기다린다.

그러니깐 그 순간, 그 장면.
죽은 줄 알았던, 정체도 몰랐던 자신들 청춘의 우상. 그 실존과 마주하게 될,
성공하지 못했다고 믿었던 자신의 인생이 해낸 것들을 당면하게 될, 그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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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프타운의 뮤직홀에서 불이 켜지며 로드리게즈의 노래가 시작되는 순간의 열광 속에, 나는 9호선의 지옥 같은 출근길에서 사람들 사이에 끼여 5.3인치의 작은 화면으로 그 장면을 보다가 기함되었다.
그것이야 말로 사실은 내가 꿈꿀 수 있는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5
형태는 각기 다를지라도 중학생과 건축학도의 이야기는 사실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어본 적이 있는 모든 이들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그것들을 일깨워줄 멋진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세상 곳곳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정말로 벌어지고 있는 멋진 이야기들 말이다.

놀랍도록 닮아있는 이 두 편의 영화는 바로 그렇게 우리를 꿈꾸게 한다.

당신이 혹여 특별할 것 없는 그저 그런 군상일지라도, 죽은 후에 지워지지 않고 어딘가에 남아 후세에 영감을 줄지도 모른다. 부딪히고 부서져서 실패한 듯 보이지만, 지구 어딘가 에선 당신을 추앙하고 연호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비록 공허한 짧은 순간의 환영일지라도, 콩나물 시루 같은 지하철 속에 매몰된 현대인의 판타지일지라도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아주 잠시라도, 우리 안에 깊이 숨어 있던 잊혀진 꿈들에게 호흡을 불어넣고, 세상의 각박함을 가려 로망에 젖어들게 하는 일.
그거야 말로 응당 영화가 해야 할 일이다.*

*찰턴 헤스톤 : 헐리우드 영화배우. 1968년작인 ‘혹성탈출’ 1편의 주연이며 지구를 떠 나온지 2천년 정도 지난 상태에서 태양 주변을 돌고 있는 어느 행성에 불시착한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에 그 ‘어느 행성’의 한 모퉁이에서 부서져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발견하게 된다.
**origin of love : 뮤지컬로 더 유명한 영화 ‘헤드윅’의 메인 테마곡이며 사실 태초에 우리는 서로 등이 붙어서 둘씩 짝지어져 살고 있었으나, 신의 질투로 둘로 갈라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사랑이 생겨났다는 플라톤의 이론을 주 내용으로 한 곡이다.

[영화]지구 반대편 누군가, 천년 후의 누군가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