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야구는 물론 그라운드 전체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그 시작은 항상 마운드입니다. 투수가 공을 던지지 않으면 아무일도 벌어지지 않죠. 결국 야구라는 경기가 진행되기 위해 가장 필수적이며 절대적인 행위는 투수의 투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야구는 매년 다른 종목에 비해 훨씬 많은 경기를 더 촘촘하게 소화합니다. 한국프로야구의 경우 2017년 기준으로 한 팀당 144경기를 소화하죠. 특별히 우천취소가 일어나지 않는 한. 모든 팀은 매주 6일간,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경기를 치룹니다. 다행이도, 대부분의 야수들은 큰 로테이션 없이 이러한 일정이 소화 가능합니다. 하지만 투수는 다르죠. 일정 이상의 투구 수를 기록하면 구위나 컨트롤이 떨어지고, 이를 회복하기까지는 몇 일씩 걸립니다. 그래서 팀이 한 시즌을 잘 치루기 위해서는 한정되어 있는 투수자원을 어떻게 배분해서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몹시 중요하죠.
야구라는 스포츠가 지속되어 온 세월은 꽤나 길기 때문에, 이제는 나름의 정석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가령 선발투수는 다섯명을 운용하면서 로테이션을 돌리고, 투구 수는 100여개 언저리로 끊어준다. 불펜투수의 경우도 가급적 연투시키지 않으며 투구 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더 휴식일을 보장해 준다 같은 것들입니다. 선수마다 개인차가 있고 팀마다 상황마다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항상 엄격히 지켜지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투수운용의 큰 틀은 이러한 법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법칙은 팀이 한 시즌을 가장 잘 보낼 수 있게끔 설계되어진 방법이며, 이를 어기고 투수를 무리하게 사용하게 되면 팀 성적 상으로도 효율적이지 않지만, 투수의 선수생명에도 심각함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이죠.
서론이 길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최동원의 가장 빛나는 업적을 설명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앞서 말한 선발투수의 로테이션, 즉 하루 투구수는 100구 정도로 하고 하루 등판 시 4~6일 가량 휴식일을 준다는 규칙은 최동원이 활약하던 80년대에는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혹사에 대한 인식이나 경계심도 없었을 뿐 아니라, 선수들 간에 실력 차도 심했기 때문에 감독들 입장에선 잘하는 선수를 계속 쓰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가 쉽지 않았죠. 그리고 그 대표적인 희생양이 최동원이었습니다. 선수층이 그리 두텁지 않았던 롯데는 꽤 많은 경기를 최동원에게 의지해서 성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요즘도 간혹 '투수를 갈아 넣어 만든 승리'라는 말을 쓰곤 하는데 그 시절의 그에겐 그게 일상이었죠.
그해 우여곡절 끝에 롯데는 한국시리즈(7전4선승제로 펼쳐지는 결승전 시리즈)에 진출합니다. 보통 이런 7전의 경기는 이틀 경기하고 하루 쉬고 또 이틀 경기하고 하루 쉬고 마지막에 3일을 연달아 경기를 치루는 식으로 마무리됩니다. 물론 경기결과에 따라 최종전까지 가지 않고 더 일찍 끝나기도 하겠죠.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롯데의 강병철 감독은 최동원을 1,3,5,7차전에 내보내겠다고 말합니다. 현재로서는 인간백정소리를 들을 일이고, 당시로서도 상당히 파격적인 결정이었죠.
난색을 표하는 최동원에게 강병철이 말합니다.
“동원아 우짜겠노.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 최동원은 단 한마디를 남기고 마운드로 향합니다.
“알겠심더. 마. 함 해보입시더”
이것이 항상 최동원에게 불꽃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입니다. 시즌 중의 누적된 피로도 물론이겠지만, 특히 이때의 혹사는 틀림없이 그의 남은 커리어에 심각한 영향을 줬을 것입니다.
현대의 야구에서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죠. 실로 이것은 한국 야구 초창기에 있엇던 '신화'라 부를만한 일입니다.
결국 그는 자신을 연소시켜서 팀을 우승 시켰습니다. 최동원은 예정된 선발 네 경기 외에도 패색이 짙던 6차전에 구원등판해서 벼랑 끝에 몰린 팀을 구했습니다. 전무후무한 한국시리즈의 4승1패. 마지막 최종전도 완투승이었습니다. 35년 동안 롯데가 단 두 번 밖에 이루지 못한 바로 그것이죠. 이 서사시는 어떠한 찬사도 아깝지 않을, 팀 역사를 넘어 KBO역사에 오롯이 남을 영웅의 면모였습니다. 그러니 어찌 갈매기들이 그를 칭송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PS: 특파원생활을 오래한 민훈기 기자는 메이저리그 관계자들과 만나면 항상 최동원의 일화를 자랑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결승 시리즈에서 4승을 거둔 투수가 있다.” 그렇게 말하면 아무도 안 믿는답니다. 그때 민훈기 기자가 한 술 더 붙입니다. “그런데 1패도 있다.” 그러면 다들 너털웃음을 터뜨린다곤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