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하늘에서 간간히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정감 어린 옛 거리를 돌아 아주 작은 성당 안으로 들어 갔다. 금으로 치장된 거대한 성당만 다니다 이런 작은 곳에 간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그곳에 있는 벽화 한 점 때문이란 걸 알고 조금 놀랐다.
1586년에 완공된 이 성당의 규모는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동네 성당 규모보다 작은 정도이다. 그러나 이 성당이 유명한 것은 오로지 엘 그레코의 그림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 소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림에 대한 조예가 없는 나 같은 사람 입장에서는 어떤 그림을 봐도 크게 감동 받을 일은 없다. 그러나 블랑카의 자세한 설명이 그 그림에 대한 이해를 높여 주었다. 이 그림은 엘 그레코의 천재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성당을 재건하는데 기여한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에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성 스테파노가 지상으로 내려와 백작의 유해를 매장하는 지상계와 그리스도와 성모마리아가 천국에서 오르가스 백작의 영혼을 맞이하고 있는 천상계의 2단 형식으로 그려져 있다고 한다.
1586년 엘 그레코(El Greco)가 의뢰 받아 9개월 만에 이 그림이 완성되었다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림 안에 자신과 아들을 그려 넣었다는 사실이다.
동굴같이 만들어진 멋진 레스토랑으로 안내되었다. 그 분위기를 더욱 빛내준 사실은 아주 맛있는 포도주가 병째로 나왔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같이 앉은 멤버들이 술을 좋아하지 않아 거의 한 병을 혼자 다 마시고 다른 좌석에서 놀고 있는 포도주도 가져간 패트병에 담아 왔다.
우중충한 날씨, 멜랑콜리한 기분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스페인 여행 최고의 선물은 뜻밖의 포도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