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영화그림 5-2 캘리편]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인생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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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영화그림 5-2 캘리편]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인생의 정수를 말하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013)

원제 :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개요 : 모험, 드라마, 판타지
감독 : 벤 스틸러
출연 : 벤 스틸러(월터 미티/주인공), 그리스틴 위그(세릴 멜호프/여주인공), 숀펜(숀 코오넬/사진작가), 아담 스콧(테드 핸드릭스/상사), 패튼 오스왈트(토드 마허/사이트 사장)

'제임스 서버'의 1939년 작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을 두번째로 영화한 작품입니다.
이 이야기는 한 잡지사를 중심으로 일어난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험담을 담은 판타지(공상)영화, 멜로, 미스테리, 모험, 드라마 영화이기도 합니다.
너무도 엉뚱하게 말도 안되는 공상에 유치하게 빠지는데 그 때마다 인생의 교훈을 툭 던져주는 의미심장한 화두를 제시합니다.
"당신은 의미있는 인생을 위하여 도전해본 적이 있나요?" 라는 주제를 결론이 아닌 중간에 계속 제시하는 중괄식 표현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각종 상상들이 난무하고 그 때마다 주제를 제시하고 있는데 황당무계 어수선함 탓에 많은 분은 주제를 간파하지 못하고 영화의 엉뚱한 상상에 머물러 있기 딱 좋은 영화입니다.
그 때문에 평론자의 점수가 높지 못했던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는 단 일주일 정도의 인생의 기간에 스펙트클한, 평생해도 못 담을 도전들을 담아놓았습니다.
그리고 삶의 의미이자 철학을 영화 속 전반에 흩어뿌리듯이 카메라에 담아져 있습니다.

과연 주옥같은 삶의 의미, 즉 '삶의 정수'는 무엇일까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속에서 아주 가볍게 스쳐지나는 가벼운 대사들은 절대 가볍지 않은 삶의 정수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가벼운 대사가 곧 주옥같은 명대사이고, 가벼운 일상이 곧 주옥같은 삶의 정수
임을 가볍고 밝게 우리에게 속삭여주고 있습니다.

그럼 함께 명대사(삶의 정수)를 찾아 떠나볼까요?
아니, 가벼운 일상 찾아볼까요?

1> '인생'은 끊임없이 용기내면서 개척하는 것

인생은 끊임없이 용기내면서 개척하는 거예요.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인생은 실패하는 것,
그리고 실패 속에서 교훈을 얻는 것,
그리고 다시 도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순환고리 속에서 더 나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자리를 맴돌거나 겁을 먹고 뒷걸음질 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지만

간혹, 엄청난 보폭으로 튀어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똑같은 시작, 똑같은 환경과 여건일지라도 절대 똑같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불평등한 요소는 기존의 배경이나 경제적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관련 경험, 노력하는 태도, 도전하는 자세 등의 불평등을 말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배경 지식이나 관련된 정보 또한 포함입니다.
간혹 주변 가게를 보고 '저 집 잘되네' 하고 분석했다가 따라 해서 망했다는 이야기를 많이도 듣습니다.
'어슬프게 카피했다가는 망한다'
아예 카피하려면 점 하나도 빠지지 않도록 카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왕이면 더 좋게 카피하면 좋겠지만 그 가게에서 어떤 마인드와 어떤 계획 그리고 어떤 문제(물가나 인건비 상승, 수리비, 손님의 감소 등)에 대한 대처 등은 카피할래야 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간혹은 길목도 비슷한 환경의 유명한 체인점들이 서로 가는 길이 다른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사람들은 실패가 두려워 도전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한발 떠 빨리 더 많이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실패의 경험이 많은 사람입니다.

아이들이 어른보다 영어를 잘하는 이유는 '촘스키'의 언어학적 분석으로 살펴보면 언어구조적 능력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후 학자들의 의견 덧붙임 중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부끄러움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리면 어릴수록 잘 재잘거리고 웃고 실수도 넘기기 때문에 영어회화에 대한 거부감없이 쉽게 반복하고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영어를 못하는 것은 큰 실수가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른들은 자신의 작은 실수도 아주 크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뻔뻔스러워서는 안되겠지만, 자신의 실수를 너무 크게 생각하고 사람들의 뒤에 서 있으려 한다면 어떠한 성공에 대한 큰 기쁨 또한 평생 느껴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은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2> Zoned out

멍때리기

영화를 보면서 저의 어렸을 때를 보는 것 같아 매우 신기했습니다.
저는 조금이라도 남는 시간이 있으면 상상에 빠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새로운 물건에 대해 생각하거나 구상해보기도 했고,
어려운 환경에 대한 희망적인 미래를 꿈꾸기도 했고,
신비한 마법을 사용하여 무엇을 해보는 공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심각하게도 때로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바라보고 있는 장면에서 공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럴 때는 주변에서 하는 이야기를 차단할 수 있는 투명한 헤드폰을 가지게 됩니다.
어떤 때는 배경음이나 음악 같은 소리까지도 상상하여 만들어내었으니
더더욱 비슷했으리라 봅니다.
그런 저에게 친구들은 상상력이 풍부하고 스토리가 재미있다며 간혹은 영화 감독을 해보라고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보통 멍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간혹은 '사차원이다' 또는 '애가 멍하다'라는 이야기를 많이도 합니다.

'멍때리기'를 소재한 영화 '써커 펀치'

'써커 펀치(2011)'는 독특한 액션공상장르의 영화입니다.
10대 여자 아이들의 엄청난 액션신이과 전쟁신들을 보여줍니다.
카메라나 영상미도 독특하고 상당히 빠른 줄거리와 짠한 가슴시린 이야기도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 안이 아니라 바깥 현실에서 그 아이를 살펴본다면 더없이 안타까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살짝 어두운 세계의 영웅 액션의 대가 '잭 스나이더(새벽의 저주, 300, 왓치맨, 배트맨 대 슈퍼맨 등)'의 작품인 탓인지 2009년 왓치맨의 여운이 남은 탓이었을까요?
써커 펀치는 상당히 감성 젖는 이야기임에도 이러한 분위기는 '컷컷컷' 당하고 어두운 액션은 '고고고'함으로써 단순한 킬링타임용 영화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이쁜 걸(girl)들을 화려하고, 이쁘고, 살짝은 관능적이게 표현하여 인기를 얻으려한 듯한 느낌마저 받게 됩니다.
여기에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힘든 오컬트(영적) 장르에 액션, 그리고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혼합하였으니 이건 배가 산으로 가는 듯한 이야기에 사람들은 스토리를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잭 스나이더'의 행보들을 보면 이 또한 어쩌면 대중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 감독이 원하는 영화를 제작하려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팬들은 더욱더 깊이 기억할 영화가 되었고 일반 대중에게는 잊혀지는 영화가 됩니다.

우울 모드, 하지만 팬들에게 오래 기억된 대표적 영화

트럭(1971, 스티븐스필버그)
가위손(1991, 팀버튼),
매드니스(1995, 존 카펜터)
다크시티(1998, 알렉스 프로야스),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2006, 길예르모 델 토로),
글루미선데이(2000, 롤프 슈벨),
사일런트 힐(2006, 크리스토프 갱스),
프로메테우스(2012, 리들리 스콧),


등
암울한 내용이지만 지극히 감독의 성향으로 편집한 영화가 팬들에게는 오래 기억되는 작품이 되는 경우도 제법 있지요.

그러고보니 '길예르모 델 토로'의 작품 '쉐이프 오브 워터'가 지금 개봉 중이군요.
미믹, 헬보이, 오퍼나지-비밀의 계단, 스플라이스, 007 퀀텀, 줄리아의 눈, 비우티풀, 호빗 시리즈, 퍼시픽림 시리즈, 스트레인, 크림슨 피그 등 수많은 유명 작품의 감독이니 아마도 볼만한 영화이리라 예측해봅니다.
그리고 이전 작품의 비슷한 '스플라이스'에서도 새로운 완결한 생물의 탄생을 다루었는데 조금 비슷한 분위기가 예상됩니다.
예전 작품은 탄생에 따른 사랑에서 두려움으로 주제가 바뀌어 간다면, 이번 작품은 이질감에 따른 두려움에서 사랑으로 바뀌어가는 반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시 영화 '써커펀치'로 돌아오면 이쁘장한 하지만 사회가 정신이상자로 결정한 가련한 소녀의 '멍때리기' 속 그녀는 무엇도 해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마지막 친구를 위하여 목숨 바친 헌신까지도 해내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주인공이 됩니다.
아이들이 '멍때리고 있을 때'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이유나 생각을 물어봐주시고, 공상을 발명이나 창의로 바꿀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것은 어떨런지요
아이들에게 있어 '멍때리기'는 단순히 생각이 없는 백지상태가 아닌 상상의 나래를 꿈꿀 때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이들도 어른도 무엇인가 힘들 때 이러한 '멍때리기'를 통한 자아도피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멍때리기'야 말로 어쩌면 삶의 휴식이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시뮬레이션이기도 합니다.

삶이 지칠 때 힘들 때, 그냥 꿈꾸어보고 잠시 쉬어가는 것이죠.
그냥 그 자리에서 행복한 순간을 셀프 선물하는 것입니다.

여자아이들은 백마 탄 왕자님을 향한 멍때리기를 할 때가 많다지요 ^^
재미난 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다지요 ^^
하지만 더 재미난 사실은 남자들도 그러하답니다 ^^

물론 밝혀진 통계는 없지만요 ~


3> 쭉쭉이 내놔

인정하지 않으실 수도 있으나 제가 보기엔 기억에 남는 명대사입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모험판타지 영화이자 성장 영화라고도 합니다.

벌써 어른인 주인공 월터의 성장이란 나이의 성장이 아닙니다.
그가 살아가는 모습과 태도, 그리고 가치관에 대한 성장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쭉쭉이 내놔'는 단순히 웃긴 대화만은 아닙니다.
'라이프'사의 잡지 관련 직원들을 칼질해내는 새로 군림한 독한 상사는 월터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던 잡지사의 기능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아니 당장은 그렇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후회하면 좋겠습니다만 지금도 변화 속에서 필름을 찾아내고 현상해내는 능력은 별 필요가 없어보여 더 안타깝습니다.)
그런 그는 월터가 눈에 가시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나름 중요한 위치에 있던 직원을 내치기에 눈치가 보였던 것이죠.
그래서 자꾸만 필름을 못찾는다고 타박을 연거푸했는지도 모릅니다.
해고에 대한 타당성을 성립시켜놓기 위해서였겠죠.

그 사이 착하고 순하고 아이같은 월터와 상사 사이에 불꽃 튀는 결투가 벌어집니다.
아주 통쾌한 장면이지요.
그런데 과연 월터에게 그 '쭉쭉이 인형(암스트롱)'은 뭐가 그리도 중요하기에 뺏기지도 않으려 안갖 힘을 썼던 것일까요?


만약 월터를 철없는 동심에 젖은 아이 또는 순수한 아이라고 본다면, 놀라운 결론이 나옵니다.

아이가 어른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이 무엇일까요?

피터팬은 왜 아직도 어른들의 마음속 여기 저기를 휘집으며 날아다닐까요?

아이의 철없는 순진함과 그리고 순수함 때문이 아닐까요?
그럼 상사를 다 큰 어른으로 본다면 부모님일수도 있고 학교 교육이나 사회로 확장해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입니다.
성과주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무엇일까요?
"공부"
"성공"
"1위"
"누군가를 밟고 우위에 서는 것"
한국 사회에서는 유독 서울지역의 대학교와 일류대라는 학벌, 그리고 "~사"자 돌림을 강요하기도 하지요.
이제 조금씩 달라지는 시각이 보인다는 말이 있으나 사회구조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모님도 처음부터 아이들의 재능을 키운다기보다는 공부에 실패하니 방향을 전향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월터'는 그런 어른들의 치열하고 치졸한 세상이 싫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자신의 순수한 마음으로 계속 세상을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는 영화의 중간부에서는 '아이의 마음'을 더 큰 이상을 위해 아이와 바꾸게 됩니다.
'아이의 마음'만 가지고는 급한 세상을 따라갈 수 없고, 자신의 높은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지요.
바로 '도전'이자 '열정'이라는 스케이트보드로 갈아타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열정적인 도전을 완수하자 그것을 아이에게 선물로 줍니다.
이젠 그 아이가 열정적으로 도전할 차례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선물하고 가르침을 선사하려는 의젓하고 멋진 어른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월터는 순수한 마음을 버렸던 것일까요?
그가 만약 그랬다면 스케이트보드를 아이에게 선물하고 가르쳐주려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선물하고 가르쳐주는 자세 또한 아이들을 바라보는 순수한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봅니다.
살기도 바쁜 어른이 아이들을 챙겨줄, 그것도 자신의 아들도 아닌 타인의 아이를 챙겨주는 것이었으니까요.

여인을 꼬셔보고자 하는 흑심이라 생각하심 아니되옵니다~ (순진한 웃음의 월터를 보아서라도 ^^)

오늘 영화 속 교훈을 정리해보면? ^^

세상은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은 바로

멍때리기

그리고 세상 속된 어른들에게 당차게 한 마디 하는 것입니다.

쭉쭉이 내놔

이만 내용이 많아 다음 편에 이어서 다루고자 합니다.


인생의 정수란

작은 것에 감사해하고 소소한 행복을 만끽해고 때로는 도전하라는 의미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