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아내가 자신의 사무실을 나눠 사진관을 만들어보자고 제안을 했을 때, 나는 이 작은 사진관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다. 아무래도 투자를 하는 만큼 수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렇다고 원래가 상업주의적 성향이 아닌 내가 스냅 외에 또 다른 상업사진을 찍기만 하려고 하니 긴 한숨이 나오는 것도 사실 이었다.
그래서 요즘 돈벌이가 되는 사진이 뭔가를 찾아보았는데, 요즘은 강아지 프로필이나, 컬러 증명사진 등이 유행을하고 사람들이 많이 찍는다고 한다. 실제로 주변에 얼굴을 아는 스냅작가님들도 어느 새 컬러 증명사진 스튜디오를 오픈한 작가들도 더러 있었다. 다들 스냅만으로는 이제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도 해 볼까 하고 고민을 하다 뭔가 먹기싫은 음식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 선듯 내키지가 않았다.
그리고 사실 인물초상사진관 유실물보관소는 범어사로 올라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다보니 - 부산에서 외진 곳이라 - 여기서 컬러증명사진을 한들 누가 이 곳까지 찾아와서 사진을 찍을까? 아무래도 그런사진은 서면이나, 부경대 앞 같은 번화가에 위치하지 않으면 큰 재미를 보기 어려울 것 같단 생각도 든다.
긴 머리를 자르고 인증샷
아내는 "돈을 쫒지말고, 자신의 꿈을 향해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알아 줄 것이다" 라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아내에게 "돈을 벌지 않아도 되니까 니가 하고 싶은 드레스를 만들면서 즐기면 돼" 라고 말했다. 그래서 아내에게 나도 좀 느린 사진관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엔 '흑백사진관 유실물보관소'라는 이름으로 계획을 시작했다. 암실도 만들었고, 부산에서는 유일하게 흑백필름사진을 찍는 사진관이라는 컨셉으로 흑백사진관을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많은 고민 끝에 '인물초상사진관'이라는 이름으로 정하였다. 개인적으로 흑백사진을 좋아하나 흑백이 모든 사진에 가치는 아닐 뿐더러,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방식들을 제한을 둔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리고 흑백사진관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뭔가 내가 하고 싶은 작업과는 다른 이미지들이 생겨나고 있어서 뭔가 찝찝하기도 했다.
초상이라는 말은 뭔가 익숙하면서도 어색한 단어다. 이제는 사람들이 초상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하지만 사진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만 하더라도 유럽에서는 초상화는 귀족이나 일부 돈많은 이들이 소유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진이 발명되고 누구나 자신의 초상사진을 소유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만큼 초상사진은 사진의 가장 오래된 역사 중 하나이다.
또한 초상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위 국어사전에 나와있는 것 처럼, "비춰지거나 생각되는 모습"이라는 뜻이 있다. 흔히들 유행가 가사 같은 곳이나 문학 등에 '젊은 날의 초상' 같은 말을 쓰기도 한다. 뭐 요즘 세대에 어울리는 단어는 아닐지 모르겠다.
나는 사진관이 사진을 찍으러오는 공간임과 동시에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란다고 말한적이 있다. 사진을 찍는 일은 쉽다. 그냥 카메라 앞에 서서 웃어주면 된다. 그게 다다. 그런데 진짜 그게 다다. 나는 서울에 유명한 흑백사진관인 물나무 사진관에서 하는 프로젝트 중 '자화상'이라는 프로젝트에 큰 감명을 받았다. 셔터를 온전히 피사체(찍히는 사람)에게 맡기고 작가의 간섭없이 사람들은 자신의 참 모습을 고민하며 셔터를 스스로 누르게 하는 작업이다. 멋지다 사진작가로 누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나로서는 절대 범접할 수 없는 깊이의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가면 울고 나온다는 흑백 사진관ㅣ김현식 사진작가ㅣ동기부여 다큐멘터리 영상 보기 듣기
내가 이러한 프로젝트에 계속 끌리는 이유는 오랫동안 내가 바라고 원하던 사진이라는 생각에서이다. 나는 지금 스냅사진을 찍으며 살고 있지만 직업으로서의 사진과는 다른 내 개인적으로서의 사진은 좀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화려하고 예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아니라 정적이고 회화적인 사진을 찍어온 사람이고 그게 내 안에 있는 작가로서의 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물초상사진관이라는 이름은, 자신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공간, 자신의 얼굴과 대면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유실물 보관소라는 이름은 사진이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기록에 있다는 나의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 잊어버릴지 모를 자신에 대한 기억, 혹은 그 순간의 기억을 보관하는 곳이라는 뜻을 담았다.
시작은 거창하다. 나는 이제 겨우 30대 후반이고, 사진을 진지하게 시작한지는 7년짜리 초짜 작가다. 그리고 뭐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부산에서 작은 스냅업체로 밥벌이를 하는 평범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내가 당장 어떤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자만심이다. 그냥 '인물초상사진관 유실물보관소'는 첫 발걸음이다. 처음 사진기를 잡았던 스무세살의 열정적인 청년에서 이제는 앞으로 태어날 로니의 아빠가 된 장년이 된 지금까지도 수없이 나에게 질문했던 '나는 과연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은가' 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그저 첫 걸음일 뿐이다.
나는 평생 사진을 하고 살겠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원래는 절대 밥벌이로는 안하려고 항상 다른 직업을 가졌지만 결국 내가 제일 잘하는 것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도 사진이라 밥벌이도 하고 있지만 어쩌쿵 저쩌쿵 여러 이유나 변명을 대더라도 나는 그냥 사진이 좋다. 그리고 이제는 내 사랑하는 아내도, 내 딸 로니도 먹여 살려야하는 가장으로 사진은 나에게 생존의 수단이기도 하다 ^^;;;;
하지만 당장의 몇만원의 돈을 버는 사진관을 만들기보단 느리고 천천히 가더라도 가치있는 작업을 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사실 작은 사진관들이 하나둘 씩 생겨나고, 돈을 벌려면 유행에 따라 발빠르게 움직이고 변화해야하는 것이 맞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일부러 돌아가려고 한다. 사람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살면서 나는 그렇게 얼마나 많은 손해를 보고 살았는지, 알면서도 또 이런다. 이 것도 병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