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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도 아니고 일기다. 쓰던 대로 쓰면 되는데 자꾸 힘이 들어가서 쓸 수 없다. ‘공개일기’ 도 아직 어색한데 ‘일기 공모전’ 이라니! 처음 스팀잇을 제안받았을 때도, 나는 비공개 블로그에 일기나 쓰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그 일기를 읽고 가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어도 신경이 쓰인 적은 없었다. 잘 쓰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반면, 스팀잇은 내 글을 읽어 달라고 진열해놓고 평가받는 곳이었다. 정성껏 쓴 글이 외면받거나 비난받으면 어떤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지 무서웠다. 그런 불안함을 숨기고 내가 뱉은 말은 I don't write for money! 그리고 며칠 전 쓴 글의 제목은 ‘돈돈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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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어떤 일기를 써야 할지 모르겠다. 일기를 올리지 않은 18일 동안(왜 하필 또 18일...) 이런저런 일이 많기는 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써도 1500자는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보면 방학 때 밀린 일기를 제출이라도 해야 하는 줄 알겠다. 억지로 쓰는 것 아니다.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유일하게 쉴 수 있는, 나를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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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남보다 5년은 늦다고 생각한다. 연애도 늦었고, 취업도 늦었으며, 사춘기도 고3 수험생일 때 찾아왔다. 이를테면 중2병이 고3 때 온 것이다! 남들은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문제집 풀고 있을 때, 혼자 불 꺼진 교내 야외식당에 앉아 음악을 듣거나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옥상에 있다 선생님께 걸려도, 평소 내가 얼마나 해맑았는지 너 그러다 담배 피운다고 의심받아! 라고 한 소리 듣는게 전부였다. 속에는 오만가지의 감정과 생각이 들어찼는데, 이야기할 곳이 없었다. 물론 찾아보면 있었을 텐데, 들어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교도소 수감자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다. 대신 제일 그럴싸해 보이는 노트를 열어서, 미치기라도 한 사람처럼 글을 썼다. 아니, 글이 아니라 배설이었다. 펭귄이 얼마나 괴로운지에 대해서, 화분에 음표를 심는 아이에 대해서, 이상한 집에 사는 이상한 사람들에 대해 토로했다. 심지어는 그림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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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일기장을 한참이나 찾아보았는데, 없다. 침대 밑 수납 상자를 하나하나 열어보고 책장을 뒤지느라 먼지가 묻은 손을, 닦아 내지도 않고 바로 이어서 키보드를 두드린다. 내가 한국에 없는 사이 집은 두 번이나 이사했는데, 어느 날은 한국에 왔는데 집이 이사를 가고 없었다. 이사간 집주소를 몰라 황당했다. 더 좁은 집으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주인이 자리를 비운 내 물건의 절반 가까이가 희생됐다. 아무리 그래도 일기장을 버리다니. 그럴싸한 노트에 정신나간 낙서가 있으니 또 질색을 하고 버렸나. 그 전에도 방학일기라든가 비밀일기를 쓰곤 했지만, 살기 위해 쓴 그때의 일기가 지금껏 오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 슬슬 손이 가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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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지난 18일 중에서 영국인 넷, 우리나라 도자기 명인과 몇 박 며칠을 함께 하며 있었던 에피소드를 적으려고 했다. 그 사이, 지금은 뉴욕의 잘나가는 레스토랑의 오너가 된 친한 지인이 오랜만에 한국에 와 요리학교 동문과 밤새 술잔을 기울인 일, 주말 장에 부스를 얻어 직접 만든 수제 파스타를 파는 중에 최근 미얀마에서 잡오퍼가 들어와 진로 고민을 하는 태국 친구가 한국에 놀러 온 일, 싱가폴에서 일하다 최근 귀국해 호텔 레스토랑 오픈 멤버로 일하는, 주변에 얼마 남지 않은 여성 요리사 친구 하나와 재회한 일, 그리고 오늘 춘천에 가서 정든 집을 떠나보낸 일도 함께. 그런데 글도 역시 습관인지, 결국엔 이런 글을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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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래. 나에게 이야기하면, 그게 너야. 하고 내가 들어주는 일기. 내가 이렇게 힘들어 어리광부리면 그래, 너 장하다 하고 위로하는 일기. 그런 내 일기를 오늘도 훔쳐 봐주어서 감사하다. 함께 보고 들어 주어서. 1500자를 어떻게 쓰나 했는데 딱 2000자를 썼다. 방금 이 문장을 써서 그렇다. 이제 비비고 새우 교자를 먹고 잘 것이다. 방은 늘 그렇듯, 내일 치우는 걸로.
7 (추가)
그런데 이 일기를 공모전에 내야 할 지 고민이다. 아무래도 5번의 내용이 낫지 않을까. 내일 시간이 되면 일기 한 편을 더 쓰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겠다. 7번을 쓰는 바람에 2257자가 되었다. 제길. 공모전에 내게 되면 수정할 것이다. 참고로 내가 말하는 공모전은 제1회 PEN클럽 공모전이다. 많은 분의 일기를 훔쳐볼 수 있다.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