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 스팀잇을 시작했을 때, 유난히 눈에 띄던 글이 있었습니다.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 바로 @manizu 님(이하 마니주님)의 수제펜 후기였어요. 그리고 그 후기에는 어김없이
@sochul 님(이하 소철님)도 함께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영문을 모르던 저는 ‘유명한 건가보다.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구나’ 하고 구경이나 하고 말았지요.
스팀잇을 시작한 건 아르헨티나 룸메이트 친구의 권유 때문이었는데, 왠종일 방구석에서 뒹굴며 가끔 일기나 쓰는 저에게 바로 이거야! 하며 스팀잇을 알려주던 그 상기된 얼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정작 본인은 계정도 없으면서 말이죠.
I don't write for money!
저의 첫 반응입니다. 나는 돈을 위해 글을 쓰지 않는다고 소리쳤지요. 자존심이 상했던 것도 있고, 자신이 없는 것도 있었어요. 내 자식같은 소중한 글을 도마 위에 올렸다가 난도질이라도 당하면 어쩌나요? 글을 쓰는 것은 제게 생명을 연장하는 일과도 같은데, 내가 나의 글을 부끄러워 하게 되는 상상을 하니 끔찍했어요. 그런데 ‘글’ 로 먹고 사는 상상이 그 끔찍한 상상을 이긴 것입니다.
하지만 곧 난도질을 걱정한 제 자신이 우스워졌어요. 제 글엔 아무도 관심이 없었거든요. 보팅이나 댓글은 커녕 조회수도 올라가지 않았어요. 자존심이 상해 글을 지워버렸습니다. 정성껏 차려놓은 음식이 무관심 속에 초라하게 식고 있는 것만 같았지요.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창피하고 속이 상해 냅다 쓰레기통에 버린 거예요.
그 후 약 80일, 우편물을 하나 받았습니다.
제 이름 석자가 적히 우편물이었지요. 보낸 이를 보고는 미소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바로 뜯어보지는 않았어요.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내 이름이 적힌 선물을 보고 하루종일 들떠 있는 아이처럼 그렇게 포장만 쪼물딱 거리고 있었습니다. 당일엔 날이 어두워서, 다음날에는 하루종일 비가 와서 계속 만지작 거리고만 있다가 오늘은 해가 났길래 드디어 선물을 들고 밖으로 나갔지요.
3월의 첫 날인데, 바람이 쌀쌀하더군요. 재작년 부모님과 함께 아파트 단지 잔디밭에 장미를 심어 놓았는데, 그 앞에서 선물을 뜯고 싶었어요. 봄이 오는 잔디밭에서. 아직 날이 추워 장미 행색이 초라하기는 해도 틀림없이 살아 있었습니다.
초록색 가죽 파우치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진노랑 색깔의 펜을 보는 순간 하아 하는 탄성이 입에서 흘러 나왔어요. 초록 들판에서 노란 꽃을 피워내는 모습 같았거든요. 쌀쌀한 바람과 마른 잎이 무상하게도, 저에게 봄이 왔어요.
이 펜은 마니주님이 손수 나무를 깎아 만드신 펜이랍니다. 펜의 마디가 나눠져 있는 모습에 한뼘씩 곧게 성장하는 대나무가 생각이 납니다. 비가 오면 더 쑥쑥 큰다지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비밀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고 대나무숲에 외쳤다던 이야기도 생각이 납니다. 스팀잇은 저의 대나무숲이기도 하거든요.
잔디밭에 앉아 한 자 한 자 글을 써내려가 봅니다.
8개월같은 80일동안 스팀잇을 하면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소용돌이 같은 이 곳에서 참 여러 손을 붙잡았습니다. 망설이던 kr 커뮤니티에 발을 들였고, @clayop 님,
@floridasnail 님,
@soosoo 님 덕분에 해외소모임에 가입을 하며 소속감을 얻었고,
@danihwang 님의 뉴비지원을 받으면서 글을 꾸준히 쓰게 되었습니다.
@bamjigi 님과
@brianyang0912 님을 시작으로 친구들이 생기고,
@morning 님,
@kmlee 님,
@skan 님같은 키다리 아저씨들이 생기고, 유명한 고래 분들도 다녀갔지요. 덕분에 트렌딩에 올라도 보았고,
@kmlee 님과
@rbaggo 님 글에 소개도 되어 보고,
@ryanhkr 님,
@soyo 님,
@zzoya 님,
@munhwan 님,
@sintai 님을 비롯한 여러 이벤트에도 당선이 되었습니다.
@feyee95 님과
@asbear 님이 주관하신 슈퍼뉴비K 수상의 영광도 얻고
@zzoya 님,
@cagecorn 님,
@illust 님,
@kimthewriter 님께 너무나 고맙고 소중한 그림도 선물 받았어요.
@happyworkingmom 님과
@bleury 님께는 생일 선물을 받고,
@saloon1st 님,
@chocolate1st 님,
@feyee95 님과는 실제로 만나는 일까지 생기고 말았습니다. 우리 메라투쓰와 kr-pen 이웃들도 빼놓을 수 없고 거의 매일 저를 찾아 주시는 고마운 분들까지 하면 정말 자리가 모자랍니다. (← 제일 중요한 문장)
그래서...
마니주님이 소중히 쓰라고 주신 펜으로 소중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보았습니다.
제 첫 포스팅부터 거꾸로 읽어 올라 오면서 저에게 큰 힘이 되었던 분들, 함께 소통했던 분들을 마니주님&저의 펜으로 하나하나 적었습니다. 빠진 분들도 계실 거예요. 지금도 벌써 한 분 생각나네요. @afinesword 님 저 때문에 오늘 막걸리에 소주 섞어 드시는 건 아닐런지요. (로사님과 르캉님도 빠졌네요 ;ㅁ;) ‘나 없는 듯?’ 싶은 분들 댓글로 말씀 안해주시면 제가 더 서운해 할 겁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특별히, 저를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나무를 고르고 깎아, 이름까지 새겨 저만의 펜을 만들어 주신 @manizu 마니주님과 SI 선정작가라는 값진 날개를 달아, 저를 물심양면으로 응원해 주시는
@sochul 소철님, 그리고 이 모든 기쁨을 누리게 해주신
@kyslmate 쏠메님과
@rbaggo 르바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멘... 이라도 나와야할 것 같네요.)
‘나랑은 상관 없겠지’ 했던 마니주님의 수제 펜이 제 손에 있네요. 요즘 부쩍 사랑을 받는 느낌이 듭니다. 마른 들판에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 펜으로, 꽃을 피워낼게요. 고마워요, 모두. 정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