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 기심불변이라고 했다.
한국에 온 지 벌써 두달이 훌쩍 지났는데 구직은 생각조차 안하고 있다. 시간도 많은 김에 친구를 도울 겸, 이번에 며칠 통역일을 한 것이 전부다.
돈 쓸 일이 없다. 부모님 집에 얹혀 사니 방세와 식비가 나가지 않는다. 쇼핑도 안한다. 무려 초등학교때 크게 산 옷을 아직까지 입거나 하는데, 동생이 질색을 하고 내가 한국에 없는 사이 버려서 이번 겨울이 좀 추웠다. 게다가 동생이 거울이며 가방이며 내 물건을 자기 서울 집에 들고가 버렸다!
돈을 모으기 위해 안 쓰는 것은 아니고, 그냥 사고 싶은 것이 없다. 유목민같은 생활을 해와서 그런가 싶기도 한데, 다른 유목민 지인들은 해외생활을 1년만 해도 돌아갈 때 짐이 한가득인 반면, 나는 3년을 해도 대형 캐리어 하나밖에 나오질 않았다.
요리를 할 때도, 너도나도 좋은 칼을 사고 싶어 하는데 난 요리학교에서 수업도구로 나눠준, 다른 애들은 막 다룰 때나 쓰는 칼을 아직도 쓰고 있다.
그러니 비싼 명품가방을 사는 사람들도 신기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사치스러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겐 필요가 없고, 가치도 모르고, 관리도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짐이 늘어나는 것이 싫었다.
어릴 때, 엄마가 선물이라며 커다란 서랍장을 사주셨다고 화를 낸 적이 있다. 하자가 있는 물건을 공장에서 싼 값에 가져오신 것인데, 내 방에 새 가구가 들어오는 게 싫었다. 없어도 그만이었던 물건들이 하나, 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핸드폰 연락처, 싸이월드나 페이스북 친구들을 종종 정리해왔던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을 한없이 받고서도 ‘돈돈돈’ 거리는 동생에게 아빠는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내게는 물욕이 너무 없는 것도 좋지만은 않다고 따로 말씀하셨다.
며칠 전 만났던 친구(지만 언니)도 계속 ‘돈돈돈’ 하길래 영혼이 탈탈 털리는 느낌이었다. 만난 자리에 외국인 친구와 그녀의 어머니도 있었는데 얘기할 때마다 문장에 ‘money’ 가 들어가서 괜히 내가 민망했다. 그녀는 사업을 하다가 대기업을 다니고 있고 나는 백수인데, 내가 밥을 샀다! 밥값이 6만원 정도 나왔는데 언니는 왜 이렇게 적게 나왔냐며 놀라워 했다. 6만원은 이번에 내가 10시간 일한 값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에 돈을 썼는가.
한참 생각해 보았더니 여행과 음식이었다. 둘 다 물질적으로는 남는 게 없으나 내겐 무척 가치있는 경험이다. 특히 여행의 경우에는 돈을 쓰는 것 뿐 아니라 버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직장을 구하는 데 월급보다는 자유시간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썼다면 나는뻔하지 않거나 멋진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최근 나는 동생에게 묘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것이 단지 그녀가 걷잡을 수 없는 기분파에, 가족에게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못마땅하고 불편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깊은 곳에 자리잡은 것은 따로 있었다.
나는 주6일을 일하며 말 그대로 몸 하나 겨우 뉘일 방에 세들어 살고 있을 때, 동생은 부모님이 대출받은 돈으로 좋은 집에 살며 유학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빠가 동생의 학비 마련으로 힘들어 하시는 것을 눈 앞에서 본 나는, 당연히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지 않기 위해 더욱 노력했다.
동생은 나이 서른에 처음으로 회사생활을 하고 1년만에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대학원 유학을 가겠다고 했다. 무슨 돈으로? 나는 더이상 동생을 응원하고 있지 않았다. 동생의 학비로 인해 우리집이 기울고, 내 삶까지 더 팍팍해졌다는 피해의식이 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나를 베프로 아는 20년지기 친구가 나를 병들게 한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결코 주된 이유는 아니지만, ‘돈’ 문제도 없지는 않았다.
어느 날, 그녀에게 내가 아는 부자 친구들 이야기를 하는데 니가 말하는 사람들, 나보다 잘 살아? 나는 살면서 우리집보다 돈 많은 내 또래를 본 적이 없어서 그래. 라고 그녀가 순수하게,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오며 그녀 아버지 회사와 아버지가 나온 뉴스 기사를 보여주었다. 그녀 집에도 가보았고, 외제차도 여러대 있는 걸 보아 잘 사는 것이야 대충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였는지는 나도 몰랐다.
그런데 그게 나에게 빅뉴스는 아니었다. 돈이 많은데 뭐, 어쩌라고.
문제는 이 친구에게 매주 만나자고 연락이 오는 것이다. 하루는 집안일과 심부름으로 (당일치기로 춘천에 다녀왔다) 피곤해서 다음에 보자고 했더니, 자기는 뉴욕에서 웨딩 스냅사진 찍고 어제 돌아와 PT(퍼스널 트레이닝) 까지 받았다고 하면서, 너가 나보다 더 피곤해? 라고 하는 것이다. 너는 니가 하고 싶어서 한 거잖아...
며칠을 미뤘는데 결국 만나게 되었다. 또 비싼 음식점에 갈까봐 부담스러운데 마침 나보고 메뉴를 정하라길래 김밥이나 만두같은 것을 먹자고 했더니 반응이 없었다. 결국 그녀가 가자는 인도식 카레집에 갔고 그녀는 화이트 와인도 한잔 주문했다.
5만원 가까이 나왔는데 혹시라도 그녀가 사주겠다고 할까봐 내가 먼저 반반 내자고 했다. 그랬더니 친구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야! 하는 것이다.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니, 이번엔 니가 낼 차례야. 라고 한다.
사실, 지난 번에도 내가 냈었다. 지지난번에 친구가 밥 사준것이 고마워서 낸 것이었다. 그런데 그 얘기를 하기가 싫었다. 대신 말했다. 너, 나한테 밥 얻어 먹을라고 계속 만나자고 한거냐? 그랬더니 그녀가 하는 말, 야, 내가 이딴 거 얻어 먹을라고 널 보자고 했겠냐?
글을 쓰면서도 내 자신이 구질구질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대기업 다니는 언니에게 밥을 산 것도 부담스러웠고, 어제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데려온, 그녀의 외국인 직장동료 두명의 몫까지 2차를 계산한 것도 나는 사실 부담스러웠다. 1차는 친구가 냈는데 2차를 처음 본 외국인들에게 나눠 내자고 할 수가 없었다. 한국 돈도 없다는데.
이봐라. ‘돈돈돈’ 하고 있다.
돈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돈 쓸 일도 없으니까 돈에 구애받지도 않았고, 그래서 돈 벌 생각도 안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시작된 낯선 불만의 뿌리가 모두 돈이 없음에서 생긴 피해의식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알다.
돈이 아니었으면 내 동생이 못마땅하거나 부모님께 서운하지 않았겠지, 친구들 만나기 부담스러울 일도 없었겠지. (언급한 20년지기 친구를 만나고 싶지 않은 건 다른 이유지만.) 스파업을 못해서 죄책감 가질 필요 없었을 거고 예전 글에서 시급 6천원을 강조하지도 않았을 거다.
처음으로 인정한다. 나도 결국은 ‘돈돈돈’ 이라는 걸.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 불만족의 정체를 알게 되니,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속이 시원하고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마치 저주에서 풀려난 것만 같았다. 미워질 뻔한 소중한 사람들이 다시 이뻐 보였다. 정말 다행이다. 장을 보러 가서도, 예전같으면 덜덜 떨었을텐데 오히려 신이 나서 회 한접시를 샀다. ‘겨우 이거였어?’
겨우 돈에 쫄아서. 그까짓 거 벌면 되잖아.
작심삼일 기심불변(起心不變)이라고 했다. 마음을 먹은 것은 3일이 가지만, 스스로 일어난 마음은 변치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계획을 세우거나 결심을 하는 것과 달리 마음이 저절로 동하기엔 시간이 걸려, 그 사이 주변의 재촉과 강요가 끼어든다고 했다.
그 동안 참 당당하고 마음 편하게 백수로 살았다. 잡오퍼가 들어와도 거절했다. 일할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스트레스의 주범을 알았으니, 어찌 없애버릴 지 입꼬리를 올린 채 궁리해보려 한다. 최소한 확실한 것은 더이상 안 벌고 안 쓰거나 덜덜 떨며 쓰는 것이 아니라, 기분 좋게 쓰고 열심히 버는 게 낫다는 것!
오늘도 이렇게, 남들은 다 아는 당연한 이야기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