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아있는 나날 (The Remains of the Day)'은
'순진해 빠져 영혼까지 털리는 영국 귀족 신사와
차갑게 매력적인 팜므파탈 독일 여인,
발에 끼는 구두를 신고 본데를 또 보느라 물집이 잡혀 쩔쩔 매는 뚱보 프랑스인,
당신들은 아마추어라 일갈하는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은 실용주의자 미국인.
이들이 펼치는 희대의 우화'라고도 읽힌다.
그러고 보면 순수란 것을 선악이 만연한 이 세상에서 마냥 미덕이라 칭송할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수 없이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 줄 수도 있으므로.
차가운 매력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자칫하면 죽는다.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피하고 볼 일이다. 그 바람에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서 집중력을 잃을 수 있으니까.
배알이 꼬이지만, 심지어 속이 뒤틀리지만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았다면, 거기다 실용적이라면 경청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에 웃는 이가 그이가 될 수 있으므로.
그 와중에 정말 멍청하기도 하지만 기막히게 재수 없는 캐릭터가 하나 있다.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기억장애 덕분에 대사를 옮기진 못 하지만 스티븐슨에게 국제정세니 세계경제니를 묻고는 대답을 못 하자 저런 개돼지(그 캐릭터의 대사는 아니고 그것에 대한 필자의 주관적 해석)들을 위해 자기들같이 귀하디 귀한 귀족 신사들이 왜 이렇게 고민을 하냐며 통쾌한 듯 자신의 의견을 대신하는 영국의 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