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는 1남2녀의 맏이인데다 동생들과는 터울이 길다. 정수가 태어난 다음 해에 세상에 나온 여자 아이는 며칠을 넘기지 못 하고 떠났다고 했다. 4살 터울인 여동생 뒤로도 셋인가가 태어나고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났다. 늦둥이 막내와는 띠동갑이다. 지금도 막내를 업고 기뻐하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정수는 그런 집안의 유일한 아들이었다. 하루가 버겁기만 하던 엄마에겐 존재만으로도 의지가 되는 아들이었다. 표현하진 않으셨지만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다부졌어도 왜소했던 당신과 달리 외탁을 해서 키도 컷고 중학생이 되면서 더 어른스러워진 정수는 아버지에게서도 깊은 신뢰를 받았다. 더구나 고만고만하던 정수의 성적이 두각을 나타내자 정수는 두분의 자랑이었고 자연스레 정수네 집은 정수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러고 보면 정수가 지닌 나르시시즘은 나름 뿌리가 깊었다.
사건 하나가 또 기억난다.
중학교 2학년 가을 소풍 때였다. 당시에는 봄 가을, 그렇게 두번 소풍을 갔었다. 정수도 전날이면 설레이는 마음에 잠을 설치곤 했다. 일년에 두 번 엄마가 싸주시는 김밥을 맛 볼 수 있는 날이었다. 깨와 소금을 넣고 정성껏 볶은 밥에 단무지며 당근, 시금치 등을 넣고 살짝 구운 김으로 말아서 썰면 정말이지 세상에서 맛 볼 수 있는 가장 맛난 음식이 되었다. 거기다 톡 쏘는 탄산음료며 과자까지 그날만큼은 거리낌 없이 즐길 수 있었다.
국민학교 때는 선생님의 인솔 아래 소풍 장소까지 열을 지어 동요를 합창하며 걸어갔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 당일 아침 몇 시까지 소풍 장소로 각자 이동을 해야 했다. 대개 친한 친구들 몇명이어울려 가곤 했다. 문제는 비가 오거나 했을 때였다. 마땅히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스스로 판단해서 소풍 장소로 가거나 학교로 와야했었다.
그날 아침은 부슬부슬 가을비가 내렸다. 하지만 정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어쩌면 눌려있던 일탈욕이 발동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모범생이란 그만큼한 일탈욕과 같은 말이다. 정수는 더 없이 착실한 모범생이었다.
그것은 내적 빈곤을 보상하기 위해 차용한 외부의 집단적 규율에 대한 복종이기도 했었고 불복종의 댓가에 대한 두려움의 소산이기도 했으며 인정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나르시시즘의 겉 모습이기도 했다. 그만큼 일탈에 대한 욕구가 감춰진 모범이었다.
영악한 정수의 머리 속이 잠깐 상황을 스캔했다. 그날 아침은 모든 조건이 완벽했다. 전날 저녁이나 밤이 아니고 아침부터 비가 왔다. 그것도 부슬부슬. 취소할지 결행할지에 대한 근거가 명확치 않았고 설사 어떤 결정이 내려졌더라도 전파 수단은 없었다. 각자의 판단에 맡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가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우겨도 마땅히 반박할 근거는 없다고 여겨졌다.
소풍을 가기로 마음 먹고 정류장으로 향하던 정수는 등교하는 친구를 봤다. 물론 한 두명이었다. 그 친구들은 교외로 가는 그 버스를 함께 타기로 한 친구들이기는 했었다.
정수는 비를 맞으며 소풍 장소에 도착했고 정류장 차양 아래서 비를 피하며 한 시간여를 기다렸다. 표정은 초조했지만 속으로는 해방의 기쁨을 만끽했다.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졌고 거기 모인 몇몇은 학교로 돌아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3교시인가가 끝나 갈 무렵,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 교문을 들어섰다. 비를 쫄딱 맞은 모습으로 교실로 들어서니 대부분의 얘들이 거기 있었다. 모두 정수 일행을 한심하게,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담임선생님은 강직하기로 소문 난 젊은 체육 선생님이셨다. 규칙을 어겼을 때는 어김이 없으셨다. 지름 4cm 정도로 동그랗게 깍은 1m 50cm정도 길이의 박달나무 몽둥이로 죄질에 따라 10대 단위로 엉덩이 찜질을 하셨고 표정이 없으셨다. 10대마다 엉덩이를 벗기고 안티프라민을 손수 발라주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선생님이 무슨 괴물인가 하겠지만 사실 당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매에 싣지 않기 위해 노력하신 분이셨다. 때리는 순간만은 표정이 없으셨지만 나머지 시간은 참으로 유쾌하셨고 언제나 학생들 편에서 생각하고 말씀하시던 분이셨다. 정수는 선생님을 존경했다. 생경했지만 명상을 처음 경험해본 것도 선생님 덕분이었다.
종례시간이 되었다. 선생님은 그날 아침 소풍장소로 갔다 지각했던 아이들을 하나씩 부르셨다. 정수와 몇몇은 마음 속으로 죽었다를 복창하며 앞으로 나갔다. 아침의 호기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런데, 그런데 겁에 질린 정수와 아이들은 생각지도 못 한 반전에 어안이 벙벙했다. 선생님은 한명, 한명마다 손수 준비하신 공책 두 권과 연필 한 다스씩을 나눠 주셨다. 그러시곤 아이들에게 말씀하셨다. 얘들처럼 '대쪽같은 인생'을 살라고.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말라고. 무릎을 꿇기보단 서서 죽으라고. 마음을 먹었으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아가라고. 이 아이들은 그것을 실천한 아이들이라고. 그래서 선생님이 손수 준비한 상을 주신다고.
당시에 정수는 우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스스로 대쪽 같은 삶을 살고있다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부끄러운 일이다. 영악한 정수는 진심인 선생님을 기만했다. 어쩌면 선생님은 정수의 얄팍한 기만을 눈치 채셨을 지도 모른다. 자기애에 사로잡힌 정수에겐 어쩌면 그보다 더 큰 가르침이 없었기에 그러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40년도 넘은 기억이 새록해지는 것에 정수도 놀라고 있다. 정수는 그 선생님이 그리워지는 밤이라고 했다.
지나간 '정수란 이'의 얘기들
1. 부담
2. 지적 허영
3. 분노, 그리고 두려움
4. 피해의식, 두려움과 분노가 만났을 때
5. 권력, 완장의 다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