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다만 삶의 어느 순간, 상처가 연상되는 순간, 잠재의식에 묻혀있던 억압되고 취소되고 소거되고 투사되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유를 알 수 없이 그야말로 스믈스믈, 하지만 빠르게 삶의 거의 전 영역을 침범합니다. 어느새 밀물이 가득합니다.
심한 경우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거나 사소한 것으로도 분노에 휩싸이기도 하고 시간이 갈수록 무력해집니다.
소위 공황발작으로 나타나거나 말을 붙이기도 겁날만큼 날카롭거나 손가락도 까딱하기 싫을 정도로 만사가 귀찮아집니다.
잠깐이지만 스스로를 추스려보려해도 쉽지가 않습니다.
사실 더 많은 경우, 위에 적은대로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견딜 수 없게 된 나중에 그간을 돌아보고나서,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정리했을 때의 얘기입니다.
반복된 횟수가 많을수록 보다 정리하긴 수월합니다.
사실 눈에 띄지 않아서 그렇지 삶의 많은 순간에 드러나고 반복되었던 모습이기는 합니다. 보다 가벼운 형태로.
그래서 우리에겐 밤이 필요합니다. 물러남이 필요합니다.
충분히 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언제 그랬냐싶게 넘어갑니다. '잠이 보약'이란 말은 그래서 생겨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우린 사느라 바빠서 잠부터 줄이곤 하니까요.
조금 쉬고 산책을 하고 가볍게 운동을 하는 것도 모두 물러남의 효과인 듯 합니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마음 맞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비슷합니다. 여행을 떠나거나 즐거운 일에 몰두해 보거나 독서나 감상도 그렇고 신앙 생활도 모두 다 그런 물러남의 시간을 허락하는 듯 합니다.
그러곤 또 언제 그랬냐싶게 우린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어떤 경우, 이렇게 돌아오신 분들 가운데는 마치 개선 장군이라도 된 것마냥 자신감에 차기도 합니다. 심지어 주변의 누군가가 고통스러워할 때 본인의 극복담을 들려주고 본인이 택했던 그것의 전도사를 자처하기도 합니다. 그럴수 있습니다. 대개는 약간의 우월감은 있었을지언정 선의가 분명하니까요. 또 실제로 그런 도움으로 일어서는 분들도 많으니까요.
문제는 미디어입니다. 제 생각입니다. 최소한 미디어는 조금 더 숙고하면 좋겠다는 의견입니다.
여하튼 이런 지점이 바로 기회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몸에서든 마음에서든, 변곡이 일어나는 부분, 이 지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물러서는 것, 혹은 보다 적극적으로 그 지점에 머무르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