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글을 쓰고 하도 반응이 없길래 보팅을 눌러보고 깜짝 놀랬었습니다. 전 정말 그런 기억이 없는데 제가 보팅을 했더군요.
순간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은 뛰고. 이거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싶고. 아무리 남의 평판에 목이 말라도 이런 부끄러운 짓을 하다니. 물건을 훔치다 들킨 사람마냥.
부끄러운 마음에 바로 다운보팅을 눌렀습니다. 뻘건 깃발이 펄럭이더군요. 그러곤 며칠을 주홍 글씨 처럼, 펄럭이는 깃발을 들고 섰는 제 글을 보고있었습니다. 처량하기도 하고 머리 속이 복잡하더군요.
궁금한 마음에 이것 저것 찾다보니 그냥 셀프보팅이 되는 것도 같고. 여튼 그래서 다시 그 뻘건 깃발을 누르니 해제가 되더군요. 순간 낙인을 영원히 지워버린 듯 홀가분했습니다.
이 일련의 과정을 곰곰 생각해봅니다. 혹여 있을지도 모를 오해의 여지를 남기지않기 위해 먼저 적자면 제 글의 요지는 선악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정의에 관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보여지는 것에 집착하는, 페르소나 지향에 대한 얘기이고 그림자를 숨기기에 급급하는 제 모습에 대한 얘기입니다. 값싼 연민을 구걸하는 얘기도 아니고 하소연도 아닙니다. 사소할 수도 있는 가벼운 흔들림에도 사실그 아래로는 도도히 흐르는 역동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직업이 정신과의사입니다. 62년생이니 적은 나이는 아닙니다. 그러니 지금 적는 것은 나름 많이 생각한 것들입니다. 타고나는 것을 무시할 순 없습니다. 전 소심함을 타고난 듯 합니다. 굳이 따지면 내향성이 더 강합니다. 환경 탓도 있었겠지만 다툼이나 분쟁을 달가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주장이나 거절을 잘 못 합니다. 그덕에 가족들은 손해도 봅니다. 제 손해야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은 또 신경이 쓰입니다.
저를 찾는 분들께는 자기주장 훈련도 함께 하고 거절하는 법도 힘주어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도 많이 변했다고 대견해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많이 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제가 부쩍 페르소나와 그림자에 관심이 갔던 이유를 알게됩니다. 제게 스팀잇은 낮선 곳입니다. 낮선 곳이면 여실히 드러나는 제 모습을 전 모르고 있었지만 제 무의식은 이미 감지하고 있었던 겁니다. 다시금 성찰하도록 저를 이끌고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무의식은 의식의 일방에 사인을 보냅니다. 몸에 밴 의식의 일방은 페르소나 지향이고 그림자의 숨김입니다. 비록 나(ego)는 아직 눈치 채지 못할지라도 무의식은 알고 있습니다. 내(ego)가 알 때까지 그래서 변화를 위한 진정한 노력에 동참할 때까지, 어떤 때는 무자비할 정도로 의식의 일방을 알리기 위해, 무의식은 제 일을 합니다.
이 모든 알람은 당사자에겐 고통이지만 성숙으로 가는 길에서 고통이란 이정표를 만나지 않기란 좀처럼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지금 성숙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