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번의 달콤했던 기억 탓일까? 여름 방학을 맞은 정수는 어느 날부터 엄마가 집을 비운 시간에 집안의 빨간 색 돼지 저금통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저금통을 뒤집어 흔들어서는 핀셋으로 동전을 꺼내기 시작했다. 동전을 넣는 틈을 손상 없이 최대한 보존하면서. 영악하기론 당해낼 사람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4살 어린 여동생에겐 그 일부를 나눠서 입막음을 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당시 2학년이던 동생도 그 동전의 효험을 모르지 않았으니 둘은 자연스레 공범이 되었다.
정수의 범죄 행각은 시간이 갈수록 대담해졌다. 10원으로 시작된 액수는 어느 덧 100원으로 커졌다.
몰래 숨어서 미루꾸(밀크캬라멜을 그때는 그렇게 불렀다)를 사 먹던 행태도 버젓이 하드(요즘 먹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아니고 막대기에 꽂힌 딱딱한 얼음 과자)를 입에 물고 백주 대낮을 활보하는 것으로 변했다. 조심성이 없어져간 것이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대담한 정수의 행보와 방안에서 들리는 저금통 흔드는 소리를 의심하던 집주인 아주머니의 밀고로 결국 정수 남매의 범죄행각은 드러나고 말았다.
엄마는 주범인 정수를 그야말로 족쳤다. 이미 종범인 동생의 진술을 확보한 엄마로선 거칠 것이 없었다. 끝끝내 줏은 돈이라 궁색한 변명을 하던 정수도 매질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매질의 고통 때문이었겠지만 정수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또 후회하며 잠깐의 호사를 접어야했다.
가난의 불편함이 자칫하면 씻을 수 없는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나 할까? 레 미제라블을 떠올리는 것은 장발장을 모욕할 터.
세상에 고마운 매질이 있을까만은 여하간 그날 겪은 매질의 고통은 정수처럼 영악한 아이에겐 약이 된 것이 분명했다. 여하튼 많이 맞았다.
고통스런 삶이었어도 살아내고 있는 이유였는데 그 이유가 도둑질이나 하고 있으니. 매질에는 그 배신에 대한 댓가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아니 엄마는 정수가 미운 것이 아니고 도둑질이 미웠을 게다. 배신이 미웠을 게다. 정수도 그걸 아는지 아파서 울기도 했지만 미안하고 고마와서도 울었다고 했다.
정수가 갖고있는 도덕적 기준에 이 일은 다는 아니어도 일말의 영향은 있었을 것이다. 물론 부모가 못 마땅하다고 느낄 때 무의식은 근사한 외부로 투사되어 지나친 도덕주의자가 되는 허영에 사로잡히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