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에야 천리라 봐야 고작 400키로. 버스전용차로롤 달리면 4시간 남짓. KTX면 두어 시간 밖에 안 걸리는 길이지만, 걷는다면 보통 일이 아니죠. 고개 넘고 물 건너 훠이훠이 간다고 해도 족히 열흘은 걸릴 길입니다.
막내가 천리행군을 하고 있을 시간입니다. 무릎과 발목이 아프다하여 지난 주일 날, 부랴부랴 보호대를 가져다 줬죠.
오늘 새벽, 방석에 앉아 모처럼 자세를 잡았는데 아내의 전화기로 딸애의 울먹이는 소릴 들었습니다. 타국 땅, 구석에서 힘이 많이 드는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3남매가 모두 천리길을 가는 중이더군요. 뿐이겠습니까? 우리 모두 걷는 중이죠.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모든 이가 다 걷는 중이더군요. 저야 어쩌면 뉘엿 뉘엿 산등성이에 걸린 해를 보며 내려가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고만고만한 고갯길이 많이 남았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모르지요. 갑자기 길은 끊어지고 수직의 벽이 떡하니 가로막을지도요.
여튼 젊은 분들은 고갯길을 힘겨워하며 오르고 계실 겁니다. 햇살은 따갑고 목은 타들어가고 다리 힘은 다 풀려서 발이 놓일 곳을 제대로 찾지 못 할지도 모릅니다.
쉬엄쉬엄 가라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딸아이에겐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그러라고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늙어서 뒤엉키는 팔자보단 그래도 기운 팔팔할 때 고생이 나은 듯 해서요.
이곳 스팀잇에도 젊은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웬만한 모임에서도 그리 노땅 축은 아닌데 여기서만큼은 젊은 척 하기가 떳떳하진 않습니다. 해서 내친김에 꽤 산 사람 척을 해보자면
'쉬엄쉬엄 가세요.'
그 어떤 것도 최선입니다. 자아가, 의식이, 습관으로 나로 알고있는 걔가 아무리 나무라고 설레발을 쳐도, 아닙니다. 모든 게 최선입니다. 느낄 수 있는만큼 만끽하세요. 고통도, 어려움도, 슬픔도. 나라고 알고 있는 걔가 하는 소릴랑, 나무라고 질책하는 소릴랑 무심히 들으시고 쉬엄쉬엄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