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봄이 되었다. 당시에는 주번이란 것이 있었다. 본래 주번은 매주 돌아가며 학급의 허드렛 일을 담당하는 당번으로 칠판을 지우고, 마실 물을 주전자에 채워 놓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하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수가 다니던 국민학교에서 주번이란 당시 중고등학교 선도부와 비슷한 것이었다. 가장 상급반인 6학년이 되면 매주마다 학급 별로 돌아가며 주번이란 녹색 완장을 차고 등교 시간에 교문을 지키도록 했었다. 하급생의 복장이나 품행을 점검, 지도하고 등교 시간이 끝나면 지각생을 잡아내고 하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 주번이 하는 일은 학교의 묵인 하에 하급생의 가방을 뒤져 놀잇감을 갈취하는 것이었다. 휴대금지 품목인 딱지나 구슬 등이 없는지 가방을 검사하고 발견되면 압수하는 것이다. 물론 압수품의 대부분은 주번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심지어 학교 앞 문방구에서 이런 것들을 사고있는 아이들을 눈여겨 봐뒀다가 교문을 통과하는 순간 그 아이의 가방을 뒤지기도 했다. 대개 2, 3학년 어린 꼬마아이들 것이었다.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 등교가 끝나고 교문을 닫으면 압수한 물건들을 한 곳에 모아 놓고 정수와 친구들은 호기롭게 전리품을 나눠가졌었다.
학교란 큰 권력이 용인한 이 작은 권력에 잠시나마 정수는 취했었다. 권력의 힘이란 놀라왔다. 참말이지 달콤했다. 누군가의 소유물을 빼앗아 내것으로 할 수 있는 힘을 갖고있다는 것이 신났었다. 저항 한번 해보지 못 하고 그분고분 빼앗기는 그들을 보면서 통쾌하기까지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숨겨져 있던 분노의 일단을 드러내도 괜찮았다. 더 큰 권력이 그것을 눈감았다. 욕을 하거나 함부로 대해도 심지어 손찌검을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은 용인되었다. 혼자라면 그래도 일말의 망설임이 생겼을지 몰랐지만 집단적일 때는 망설임은 커녕 훨씬 더 대담해졌다. 그 모든 게 완장 하나로 가능해졌다.
하지만 일주일이었다. 한 주간 정도를 더 했는지 기억은 없다. 6학년이 15학급이었으니 계산해 보면 한 번은 더 했을 것 같기는 하다.
완장을 빼는 순간 그 모든 것은 그리고 사라졌다.
아직은 어렸던 정수가 권력의 속성을 속속들이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만한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권력은 완장 하나로 가질 수 있다는 점, 완장을 채워주는 더 큰 권력에 충실하기만 하면 충분히 자기 욕심을 채울 수 있단 점, 심지어 분노가 드러나도 정당화되고 집단적이 되면 두려움도 대담함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 권력은 완장을 빼는 순간 아무 것도 아니라는 점 등을 어렴풋하게나마 정수는 그때 본 것 같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