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얻은 지금의 인지 수준은 일정 부분 '쪼개고 나눈' 덕입니다. 쪼개고 나누는 것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지 몰라도 우리 조상의 어느 지점에서 진화를 통해 획득한 기제가 아닌가 짐작해봅니다. 해서 지금도 저는 익숙하게 쪼개고 나눕니다.
기분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누고 나쁜 기분은 우울, 불안, 분노로 나누고. 그 기분의 변곡을 만든 시점을 다른 시간과 나누고. 그 시점, 머리를 스친 심상을 구별해내고. 그 심상이 떠오르도록 자극한 외부의 그리고 내부의 상황을 다른 상황과 나누고말이죠.
이런 작업이 순조로운 것만은 물론 아닙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의식은 생각보다 몰라도 너무 많이 모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모든 것을.
무의식의 정의가 본래 아무리 노력해도 알 수 없는 내 마음이기는 합니다. 그러니 모를 밖에요. 그런데 또 하나 큰 문제는 무의식의 광대무변함입니다. 크기로는 비교가 불가합니다. 모르기도 하고 광대무변하기도 합니다. 그것들을 찾아갔던 프로이트나 융을 생각하면 어안이 벙벙하기만 합니다.
설사 어렵사리 변곡을 만든 자극과 그때 머리를 스친 심상을 알아냈다고 해도 이때부터가 시작입니다. 그야말로 고구마 줄기입니다. 줄줄이 사탕입니다. 헌데 또 문제는 그렇기만 해도 다행인데 심상에는 감정이 뭍어 있습니다. 격한 감정일수록 감정반응이 격하게 딸려옵니다. 또 문제는 감정은 거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격할수록 더 합니다. 우리는 감정기제로 진화한 것같습니다. 감정은 반드시 신체적 반응을 만들고 또 행동하게 합니다. 의식적인 행동이 아니고 자동적으로. 그러니 예측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렇게 되었다간 그 모든 격한 것들이 일거에 덮여버리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물론 그것도 나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드러나고 덮히는 과정에서 겪은 아픔의 크기만큼 뒷걸음을 칠 수도 있고 그 바람에 다시 그 작업이 되려면 꽤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뭍어있는 감정을 예의주시하면서 참으로 조심스레 그심상의 줄기를 따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의식 바로 아래에서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심상을 그림자라고 합니다. 물론 그림자는 의식 바로 아래, 그러니까 무의식의 가장 표면에 있어서 그나마 의식하기 제일 수월한 무의식의 부분입니다. 그 아래는 깊이를 더 할수록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엇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그림자는 바로 태양을 마주 선 제 뒤에 제 모양을 따라 실루엣만 허락하며 누워있습니다. 고개를 돌려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태양을 등지고 서면 보입니다. 고개를 돌리는 수고를 하지 않고도. 하지만 역시 실루엣만을 허락합니다.
모처럼 봄비가 내리는 날에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