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숙한 명령이라고 읽어도 될까?
물론 숙명의 宿과 엄숙의 粛자는 다르긴 하다.
숙명의 命자도 목숨 명이고 명령의 命자도 목숨 명인게 놀랍다. 한자에는 문외한이라 운명, 혹은 숙명에서와 같은 목숨 命자를 명령에서 쓴 이유는 모르겠다.
운명은 앞에서 날아오는 화살이고 숙명은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운명은 피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삶의 끝은?
목숨을 스스로 끊는 이가 많다. 오죽이나 했으면 그랬을까? 그들이 섰던 벼랑에 서 보지 않고서야 함부로 짐작해선 안 된다.
죽을 용기가 없어 산다는 이도 많다. 그렇기는 하다. 세상에 죽음보다 더 큰 두려움이 어디 있으랴. 이것 역시 나는 왈가왈부 할 수 없다.
다만 오늘 가까왔던 나보다 젊었던 이의 부고를 듣고 생각해 본다.
암으로 투병을 해봤거나 가족이 되어 그분들 곁을 지켰거나, 암전문의는 아니다. 하지만 의사로 살아오면서 나름 그 고통의 일단을 간접적이나마 경험해본 나로선 죽음으로 다가가던 그 친구의 시간을 짐작해 본다.
몸으로 느껴지는 고통 뿐이었으랴. 바라보는 가족들을 바라보는 고통. 하지만 그 모든 고통에도 그것들을 피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살아냈던 모양이다. 의연했는지는 모르겠다.
왜?
삶은 그렇게 살아내는 거라고 삶이 엄숙하게 명했으니까.
그리고 상가에서 봤던 남겨진 이들. 의연했다. 문상객에 대한 예의가 왜 없었겠는가? 고맙다. 그들도 엄숙한 명을 받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