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은 거울입니다. 고통스럽지만 그 역할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울이 거울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반사면이 가능한 매끄러워야 합니다. 그럴 때 원상의 왜곡이 적습니다. 호수면도 잔잔할수록 주변 풍광이 잘 반영되니다.
거울면이 거칠수록 반영은 굴곡이 많습니다. 원상의 모습이 왜곡될 여지가 많아집니다.
정신치료 장면에서 내담자가 투사를 확인하려면, 즉 자기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치료자는 거울이 되야합니다. 공연한 반응이 없어야 거울이 됩니다.
스팀잇 역시 스팀잇의 표면이 매끄러워야 거울이 됩니다. 그 반사면은 스티미언의 반응입니다. 반응이 가급적 없어야 거울이 됩니다.
face to face 소통과 스팀잇 사이엔 몇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스팀잇이 거울이 되는데 결정적인 이유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 덕분이기도 합니다.
첫번째는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문자 한가지로 매우 제한적이어서 입니다. 수단이 한정되다 보니 반응을 만들어내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닙니다. 물론 그림이나 일러스트, 음악과 영상까지 다양한 시청각 수단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 부분은 저를 포함해서 주로 문자만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에 한정해야 하겠군요.
여하간 문자로만 소통을 하다보니 많은 경우, 아니 제 경우 스팀잇의 표면은 매끄럽습니다. 반응이 없거나 아주 적지요. 꽤 괜찮은 거울입니다.
물론 문자만으로도 반응을 폭발적으로 이끌어내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런 경우, 여하간 원상을 바로 보는데는 상당한 내공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 분들은 대개 그런 내공을 갖추고 계시긴 한 것 같더군요.
두번째는 평소 face to face에만 너무 익숙하다 보니 목소리나 표정, 몸짓과 같은 비언어적 요소가 배제된 스팀잇 표면은 반사면 자체의 입자가 비교적 고를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다양한 이모티콘이나 문자와 기호를 이용한 표정 등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갖고있는 풍부한 표정, 몸짓과 자세, 그리고 단어의 선택이나 발음의 속도, 강약, 높낮이 등, face to face 소통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러니 스팀잇에서 거울을 못 보기 는 face to face 소통에서 거울을 보기만큼이나 어렵습니다.
마지막 이유는 반응이 실시간이 아니란 점입니다. 그렇다 보니 창작자의 input과 스티미언의 반응 사이에 시차가 생기게 됩니다. 반응 자체가 없을 수도 있지만 사실 그런 경우는 없었습니다. 다만 지연되는 거지요. 물론 반응을 인지하는 시점이 지연되기도 합니다. 의도적으로 일정 시간이 지나서 반응을 확인하기도 하지만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사가 다망한 때문입니다. 여하간 이때에 발생하는 시차, 어쩌면 이것이 거울의 가장 중요한 요인같습니다. 이때 스팀잇의 표면은 잔잔하기 그지 없는 호수입니다. 원상의 왜곡이 거의 없습니다. 제 모습이 가장 잘 보이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거울을 깨는 것들이 있긴 합니다. 잔잔한 호수에 돌이 던져지는 순간입니다. 반영이 조각나고 비틀어지니 제대로 보일리가 없습니다. 스티미언의 반응이 나타나는 순간입니다. 그래도 스팀잇이 거울이려면 내공이 깊어져야 하는 순간입니다.
그나마 눈에 잘 띄지도 않는 플랑크톤의 보팅은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미동 뒤에 바로 멈추니까요. 저야 워낙 그런 정도만 받아본 터라 경험이 없지만 고래의 보팅은 아마도 엄청난 파도를 몰고 올 테지요. 아마 거울이 산산조각 나지 않을까 짐작됩니다.
팔로우나 리스팀도 고래의 보팅에야 비할 바가 못 되겠지만 수면을 일렁이게 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요?
사실 가장 문제는 댓글입니다. 구체적이고 익숙한 문자이다 보니 그나마 face to face 소통에 가장 가깝습니다. 심지어 대댓글로 이어질 때는 구별이 안 갈 정도입니다. 그렇다보니 거울은 온데 간데가 없습니다. 거리를 둬야 뭐가 보일텐데 그럴 여유가 생길리 만무합니다. 이 점이 바로 댓글을 거울로서의 기능을 반감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언어나 관계를 처음 배우는 영유아기와는 다르게 이미 상당량의 경험을 통해 축적된 자기만의 관점과 시각이 갖춰진 상태에서의 소통이다 보니 그런 모양입니다. 결국 투사의 양은 살아온 양에 비례하니까요.
개인 대 개인으로 얼굴을 맞댄 소통이 아니고 열려있는 공중으로의 소통이라 그런 것도 같습니다.
사실 제일 결정적인 이유는 글쓰기가 시원찮아서 입니다. 거울을 보는 것은 얼굴을 맞댄 소통이 아니어서 얻게되는 순기능 치곤 꽤나 묵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