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이 되었어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것도 학년 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침 조회를 마친 아이들은 평소나 다름 없이 우르르 교실이 있는 건물 입구로 몰렸들었다. 신발을 벗어 신발 주머니에 넣어 신발장에 넣고 또 실내화를 갈아신고, 이미 갈아신은 아이들은 왁자하며 복도를 뛰어가고. 매번 월요일 아침 조회를 마친 시각은 평소와 다름 없이 소란스러웠었다.
순간 그 모든 소란함을 일시정지 시키는 담임 선생님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삐쩍 마르긴 했어도 키가 컸던 정수가 마침 선생님 눈에 띈 모양이었다. 정수를 불러세운 선생님은 다짜고짜 왼손으로 정수의 오른 뺨을 쥐고 오른 손에는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어 정수의 왼 뺨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70년대 초, 국민학교 5학년이면 체중이 30kg을 갓 넘긴, 흔히 하는 말로 때릴 데라곤 없는 그런 아이였을 것이다.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정수는 그렇게 서너대를 맞고 뺨을 감싸쥐며 교실로 갔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하지만 발소리를 내선 안 되겠기에 뒷꿈치는 들어야했다.
들리는 얘기로 선생님께선 '와이로'를 좋아한다고들 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촌지이다. 한 학급이 백여명에 육박하던 당시로선 조금이라도 선생님의 관심을 받으려면 형편에 따라 소위 촌지가 없지 않던 때였다. 이미 그정도의 가십은 아이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하게 공유되던 때였다. 유난히 광대뼈가 나오시고 주걱턱에 다소 붉은 혈색의 선생님을 지금도 또렷히 기억한다. 어머니들이 다녀가실 때면 겸연쩍은 듯 했지만 뭔가 만족스런 묘한 웃음으로 배웅을 하시던 모습도 떠오른다.
순간 정수는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참고로 문맥을 보시면 아실 수 있듯 이 이해는 당시 정수가 갖고있던 삐뚤어진 관점에서의 이해입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존경스러운 선생님은 많고 그 선생님께서도 성심껏 교직에서 오랜동안 헌신하셨던 분임을 말씀드립니다.)
그맘 때였던 것같다. 누군가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로 정수는 부자, 그리고 힘 센 사람들이 밉기 시작했다. 드러낼 순 없었기에 그 분노는 안으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부자와 힘 센 사람들은 모두 정수가 느끼는 불편과 부러움과 원망을 만든 잠재적인 가해자였다. 하지만 분노는 두려움을 동반했다.
불편함이 부끄러움이 되고 거기에 다시 분노가 얹혀졌다. 그러나 그 분노는 두려움 때문에 안으로만 끓어 올랐다.
처음에는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분노였지만 점차 그 분노의 대상은 일반화되고 세상으로 확장되었다.
또 구체적 대상으로부터 받는 피해는 점차 정수가 살고있는 세상이 정수에게는 절대로 호의적이지 않다는 믿음으로 확장되고 견고해졌다. 세상은 점점 두려운 곳이 되었다.
그맘 때였던 것같다. 지금은 공황이라고 알고있는 그 강력했던 공포를 처음으로 느꼈던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