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딸에게 하는 말이었는데 쓰다보니 저도 못 하고 있는 거네요. 제게 해주는 얘깁니다.
무릇 디자이너의 태도는 언제나 사용자의 마음에 집중할 수 밖에 없으니 꼭 네 태도를 나쁘게만 볼 수는 없을 것 같아. 더구나 순수 미술의 입장에선 감상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보다는 창작자의 영감과 그 표현 방법의 독특함이 중요하니 그 교수님의 비판이 일리가 있어 보여.
그러니 세상의 모든 일은 어느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밖에 없고 심지어는 극단적이기까지 한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양자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하지만 더 중요한 게 뭔지 아니? 균형을 잡는다고 하면 마치 일직선인 시소에서처럼 양 끝이 위 아래로 흔들리지 않게 애쓰는 상태를 연상한다는 거야. 얼마나 피곤하겠니! 그치? 그리고 그게 바로 아무 것도 못 하고 얼어 있는 거지.
그러나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정지를 지향하는게 아니야. 잘은 몰라도 절벽 사이에서 긴 장대로 균형을 잡으며 외줄을 타는 사람도 가만 보면 끊임 없이 좌우로 흔들리는 걸 볼 수 있잖아? 그 정도의 기예를 갖춘 사람이라면 아마 좌우의 작은 흔들림에 몸이 자연스레 움직일꺼야. 의도를 갖고 움직이기에는 그 흔들림이 너무 작기도하고 너무 빠르니까.
잘 알지도 못 하는 외줄타기는 그렇고. 사실 균형이란 것은 언제나 그렇게 동적 균형인 것 같아. 그러니 양쪽에 의도적으로 매달려선 도달할 수 없고 피곤해지기만 해.
그보다는 양쪽을 통합하고 올라서는 건데. 선이 아니고 입체로, 그러니까 한 차원 높은 곳에서 조망하는. 그렇게 입체로 생각하면 사실 시소는 양 끝이 끊임 없이 위 아래로 움직이지만 한 쪽이 올라간만큼 반대 쪽은 내려가고 또 잠시 후면 올라갔던 쪽은 내려가고 반대가 그만큼 올라가는, 그렇게 동적인 균형 상태에 있는 것이지.
시소의 가운데 어디쯤에 서서 양쪽을 번갈아 보며 그 움직임을 없애기 위해 애쓰는 수고를 하는 것이 아니고 시소보다 위의 어디쯤에서 그 움직임을 바라보고 몸은 자연스레 흔들리며 중심을 잡는 거지. 자전거를 탈 때나 스케이트, 스키를 탈 때처럼. 넌 창작으로.
네 경우로 바꾸면 지금은 그저 편안하게 한 쪽이 내려가도록 하는거야. 최대한 자유롭게 떠오르는 것들이 표현되도록 해보는 거야.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 사용자, 감상자, 평가자의 입장은 전혀 고려되지 않겠지? 그러다 보면 다시 반대 쪽이 그만큼 내려갈꺼야. 지나칠 정도로 사용자의 입장만을 고려하는 쪽으로 갈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때 너는 그 가운데서 그 움직임을 없애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고, 양쪽의 기대를 절충하려고 피곤해지는 것이 아니고 자유롭게 오르락 내리락 하는거야. 그러는 너를 위에서 바라보며. 넌 이미 동적 균형 상태에 있는 것이고.
그 상태로 안정감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쯤, 그 상태는 새로운 선의 다른 끝이 되는 것 같아. 다시 불안정해지지. 하지만 디자인의 관점에선 인간이 새로 획득한 감각이나 혹은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만든 전혀 새로운 지평으로 나가는 거지. 비행기로 하늘을 날면서 보는 새로운 광경이나 시간의 축약, 혹은 스마트폰이 만든 실시간 정보의 광범위한 공유나 스마트폰과 초정밀 카메라가 합쳐지면서 만들어낸 전사용자의 사진작가화 같이. 그게 네겐 또 다시 한 차원 도약할 기회인거지. 하지만 죽을 때까지 그럴 필요는 없어. 어쨌든 그건 일이니까. 그런 태도를 그냥 일에서뿐 아니라 네 삶에서 유지하면 좋을 것 같아.
그러니 너무 한쪽의 입장이나 기준에서 나온 평가에 너를 가두지는 마. 사실 그렇게 자기를 혼내는 그 태도가 습관이야. 그야말로 내 혼이 빠져나갈 정도로 나를 비난하는 것이 혼내는거야. 혼은 절대로 빠져나가면 안돼. 위에서 바라볼 수 있는 힘도 시소의 양 끝이 자유롭게 오르락 내리락 할 수 있는 힘도 전부 네 혼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