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는 지금 집으로 달려가고 있다. 방금 손에 든 4월말 고사 우등상장을 조금이라도 빨리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어서이다. 이제 아홉살인 정수는 국민학교 2학년이다. 정수는 지난 달 월말 고사 우등상장을 갖고 갔던 때를 잊을 수가 없다. 어둡기만 하던 부모님의 표정이 순간 달라지며 환해졌었다.
당시엔 국민학교 2학년부터 달마다 월말고사라는 시험을 치렀다. 성적에 따라 학급에서 열명까지 우등상장이라는 것을 줬었다. 정수는 3월 첫 월말고사에서 상을 받았고 지금 두번째로 치른 4월말 고사에서도 상장을 받은 것이다. 지난달에 봤던 부모님의 표정은 정수로 하여금 꼭 4월에도 상을 받아야만 할 이유가 되었다.
문제는 항상 돈이었다. 엄마는 한 달이면 두세번을 그때 말로 까무라치셨다. 순간적으로 맥이 풀리면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셨다. 대개는 돈 문제로 아버지와 다툴 때였다. 정수와 어린 동생은 그저 울먹이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욕을 욕을 하시면서도 아버지는 쓰러진 엄마를 등에 업고 동네 병원 문을 두드렸고 몇 시간 후면 척 늘어진 엄마를 업고 돌아오시곤 했다.
나중에 알게된 것이지만 엄마가 보인 증상은 전환 장애가 틀림 없었다.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에 직면할 때 무의식은 신체 일부의 운동 및 감각기능을 순간적으로 소실시키면서 두 가지의 보상을 획득한다. 일단 먼저 증상을 통해 스트레스 상황을 모면하게 하고 두번째는 향후 있을 비슷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핑계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매우 미숙한 방어이긴 하지만 그 순간 나름대로 최선의 무의식적 방어라고 했다.
비록 몰락한 집안의 둘째 딸이었지만 성장할 때는 물 한 방울 손에 묻혀 본 적이 없던 엄마는 중신에미의 중신에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아버지께 시집을 오셨다고 했다. 가진 것이라곤 젊음 밖에 없던 아버지와 소작농으로 3년을 사시다 아버지와 함께 시아버지와 시숙 내외에게 쫒겨나듯 정수를 데리고 무작정 상경을 하셨다고 했다. 하루 하루는 생존을 위한 전쟁이었을 것이다. 정수의 외할아버지는 여자는 집 밖으로 내돌릴 수 없다시며 단속을 하신 탓에 엄마는 학교 근처엔 얼씬도 못 했고 결국 한글을 겨우 읽는 정도였으니 서울에서의 생활은 짐작이 되고도 남음직 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먹을 것이 없어 남의 집 쓰레기통을 뒤진 적도 있었다고 했다.
정수네 집은 단칸 문간방이다. 문간방이란 그집 대문을 열면 마당을 중심으로 방들이 이어져 있는데 그 방들 가운데 가장 처음 만나는 방이다. 대개 창호지를 바른 격자무늬의 낮고 좁은 방문 앞엔 좁은 툇마루가 있고 그 밑으로 아궁이가 있어 난방과 조리를 그곳에서 모두 해결해야 했다.
아버지는 장독대 밑의 광을 빌려 명함이나 찌라시 등을 찍는 일을 하셨다. 낮이면 하루 종일 밑창이 다 들린 구두를 신고 이 가게, 저 가게를 전전하며 일감을 맡아 와선 밤이면 조판을 하고 잉크를 발라 명함기를 돌리셨다. 그래도 월세며 쌀값, 반찬 값, 정수나 동생의 육성회비, 학용품 값을 마련하는 것은 버거웠었다. 새 옷이나 신발은 언감생심이었고 구멍난 양말이나마 잘 기워진 것도 흔치 않았다.
사실 그때는 다 그러고 살았다. 60년대 말에서 70년으로 넘어 오던 그때 서울 변두리의 달동네에서 이런 모습은 유별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정수는 우등상장이 부모님의 얼굴을 환하게 바꾸는 것이 기뻤을 뿐이었다.
물론 정수가 선택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9살 짜리 아이가 선택하고 짊어지기엔 너무 모질었던 선택이었다. 더구나 그 짐의 무게는 사춘기를 지나며 획득한 합리로 부터 정당성을 확보하고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