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오스카 와일드의 마지막 글에 번역을 시도해보며…

soosoo(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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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아주 긴 순간이다. 우리는 그것을 계절에 따라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순간의 감정을 기록할 수 있을 뿐이며, 그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돌고 도는 것이다. 아마도 시간이란 고통을 주축으로 돌고 있는 것일게다. 삶을 둘러싼 모든 조건들, 정해진 이후의 습관, 먹고 마시고, 엎드려서, 혹은 최소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들조차도, 굳어버린 방식의 변함없는 법칙에 따르는 것이다. 거기에 마비되어 우리는 옴짝달싹 하지 못한다. 그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성질은, 놀랄만큼, 하루의 아주 작은 각각의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동시에 그 성질은 마치 한 형제처럼 각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극히 본질적인 힘과 소통하려는 것 같다. 그래서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농부가 씨앗을 뿌릴 때나 구부러진 옥수수를 수확 할 때, 혹은 포도넝쿨 사이에서 포도를 주울 때, 과수원 풀밭이 만든 부서진 꽃잎들 혹은 땅에 떨어져 짓이겨진 과일들. 우리는 이것들 중에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또한 알 수도 없다.

- 오스카 와일드, 심연으로부터, 문단번호 1, soosoo@soosoo번역 (오역에 대한 지적은 여기서 대댓글로 부탁드립니다. )


본의 아니게 점점 오스카와일드(Oscar Wilde, 1854-1900)라는 작가에 대해 계속 알게 되는, 아니 알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쓴 것으로 알려진 "심연으로 부터"란 작품이 번역공방에 올라오고 나서 다시 에디터가 아닌, 초벌번역가로서의 입장에서 한 구절을 번역해봤는데요. 이 글을 번역하고 나니 포스팅을 하나 쓰지않고서는 견디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연으로부터"는 1905년 일부가 발췌본으로 출판되었고, 1962년에 와서야 전문이 출간되었다니, 그가 죽은 후 무려 62년 후에야 출판된 귀한 책입니다. 1899년에 희곡으로 써 두었던 "진지함의 중요성 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 "이상적인 남편 An Ideal Husband"등을 책으로 출간했다니 죽기직전까지도 글을 쓰고 편집했었나 봅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동성애자란 이유로 감옥에 갇혀 2년간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팬톤빌(Pentonville), 완즈워스(Wandsworth) 감옥에서 다시 레딩(Reading)까지 두 번이나 이감되었군요. 레딩감옥에서 쓴 글을 정리하여 1898년 "레딩감옥의 노래"로 시집이 우리말로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작가이름은 C.3.3. 자신의 수인번호였군요. 왠지 우리의 천재시인 이육사(264)가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감옥에서 자신의 연인에게 보낸 이 편지글은 사실 그의 만년작이자, 유작인 셈이군요. 감옥에서 나온지 2-3년 만인 1900년, 46세에 죽었으니 우리로 치면 정말 꽃다운 나이에 떠났지만 120년간 많은 작품들로 우리의 기억에 남는 사람입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인생 마지막 글들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좋은 번역 부탁드립니다."

이게 번역공방에서 전달한 메시지였습니다. 메시지를 보는 순간, 울림이 확 다가왔습니다. 왠지 그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동화와는 어쩌면 전혀 다른 성질의 글들, 자신의 인생에서 떠오르는 연출이 아닌 지극히 이성적인 글로 표현한 자신의 이야기를 한글로 번역해 본다고 생각하니 조금 떨리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인터스텔라 이후 시간이란 일직선이 아니라 회전하는 것이란 공상을 많이 하고 있던터라, 시간이 주제인 1번 문단을 번역하면서 왠지 큰 공감대가 생겼습니다.

문학비평가이자 학자였더 리차드 엘먼(Richard Ellmann)은 "심연으로부터"를 이렇게 평했다는군요.

"지금까지 쓰여진 가장 위대하고 긴 러브레터 가운데 하나"

이렇게 오스카 와일드는 오래전에 죽었지만, 그를 알게 된지 얼마 안되어 짧은 시간동안 그의 머릿속, 가슴속을 샅샅히 들여다보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떠나보내는 길에서 마지막 글을 접하게 되었군요. 기록은 쓸 데없어 보여도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그 사람일 수 있게 하는 건 바로 기억 때문이라죠. 우리는 우리의 기억이 아무리 사소해도 열심히 써 두어야겠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어도 기록할 수는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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