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에 위협이 된 자들에 대한 기록말살형Damnatio memori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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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에 위협이 된 자들에 대한 기록말살형Damnatio memoriae

베네치아 공화국 시절, 국가 원수(Doge, 도제)의 관저로 사용되던 산 마르코 광장의 두칼레 궁전 내 "공화국 국회 회의장" 벽면에는 역대 원수들의 초상화가 쭉 걸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딱 한 부분만이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 대신 그냥 까맣게 칠해져 있는데, 1354년에서 1355년까지 원수를 역임했던 마리노 팔리에로의 초상화가 걸려 있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사진 참조). 마리노 팔리에로는 귀족 중심의 과두정을 해체시키기 위하여 일종의 쿠데타를 계획했다가 발각되어 동료들과 체포된 뒤, 원수의 신분으로 공화국에 반하는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참수형을 당합니다. 그리고 그 죄 값으로 원수를 역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으로 기록되고 기억되지 못하는 일종의 기록말살형까지 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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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역대 4명의 대통령이 국가 체제의 근간이 되는 민주주의와 헌법에 반하는 행위로 인하여 공식적으로 불이익 혹은 처벌을 받았습니다. 박정희야 김재규의 총에 맞아 미리 죽어버려 공식적으로는 어떠한 처벌도 받지는 않았지만, 이승만의 경우에는 부정선거 때문에 일어난 한국 최초의 시민혁명 4.19로 불명예스럽게 퇴진한 뒤 죽을 때까지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못했고, 전두환과 노태우는 나중에 정치적인 이유로 사면-복권되기는 했지만(저는 이것이 김대중의 가장 큰 실책이라 생각합니다), 내란죄와 반란죄로 각각 무기징역형과 12년형이 선고받았었으며, 박근혜는 헌법과 법률 위반으로 파면을 당했습니다.

물론 저들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양한 평가가 있는 것이 더 민주주의적인 분위기라 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적어도 정부의 공식적인 평가 만큼은 일관되고 단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청와대나 대통령 기록관, 대한민국 역사 박물관 같은 역대 대통령의 초상을 나란히 걸어 놓고 있는 국가 기관에서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경우과 같이 공식적으로 처벌을 받은 저 4인의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을 검게 칠해놓고(곧 5인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밑에

이승만 (1, 2, 3 대 대통령) : 부정선거로 인해 불명예 퇴진
전두환 (11, 12 대 대통령) : 12·12 군사 반란 및 5·17 내란죄로 무기징역형 판결
노태우 (13 대 대통령) : 12·12 군사 반란 및 5·17 내란죄로 12년형 판결
박근혜 (18 대 대통령) : 헌법 및 법률 위반으로 파면

이라고 사실관계를 최대한 건조하게 명시해 놓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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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는 "좋은게 좋은거지"라는 가치기준에 따라서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과거의 안좋은 기억은 적당히 두리뭉실하게 뭉게고 넘어가는 사회적 습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직은 사회 전반에 걸쳐서 독보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공직인 만큼, 대통령직에 대해서 만큼은 아주 냉정하고 건조하게 평가할 필요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거의 대통령직 수행자들에 대한 냉정하고 건조한 공식적인 평가는 대통령이라는 책임이 막중한 공적 직위를 앞으로 수행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적어도 이렇게는 해서는 안된다"는 최소한의 가이드 라인으로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