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발굴된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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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 발굴된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두상
최근 로마제국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두상이 이집트의 콤옴보Kom Ombo 지역에서 지하수의 수위를 낮추는 작업을 하던 이집트 관계 당국에 의해서 발굴되었습니다.(사진) 이집트가 로마제국에 편입된 이후에도 이집트에서는 계속 이집트 스타일로 로마 황제들이 파라오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원래의 로마 스타일로 만들어진 황제의 석상은 그 발견의 예가 아주 흔하지는 않습니다. 이 석상은 발굴 직후 즉시 보존처리 과정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로마를 찾으셨던 분들은 아마도 쉽게 떠올리실 캄피돌리오 언덕 위에 있는 당당한 청동 기마상의 주인공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5현제' 가운데 마지막 황제로 서기 161-180년에 재위에 있었습니다. 아우렐리우스는 황제이면서 동시에 엄청난 철학 '덕후'였는데, 날씨가 무척이나 궂은 도나오 강 전선에서 약한 몸을 이끌고 갤갤거리면서도 <명상록>이라는 철학사에 길이 남을 역작을, 그것도 그리스어로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공의 선'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스토아 철학을 그다지 역량이 탁월하지 않았던 군사행동에도 계속해서 직접 참여함으로 몸소 실천한 '행동하는 지식인'이기도 했습니다.
널리 알려진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아우렐리우스의 군사적 역량을 시종일관 카이사르와 비교하며 아우렐리우스를 은근슬쩍 폄하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건 카이사르가 군사적으로 '먼치킨'에 가까운 인물이었던 것이고 (또 나나미 할머니가 카이사르를 심하게 편애하기도 하고), 종합 능력치로 치자면 아우엘리우스는 카이사르 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는 걸출한 인물이었습니다.
혹자들은 그가 황위를 친아들인 콤모두스에게 물려주었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 이전의 황제들의 경우 친아들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양자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줬던 것이고, 후대의 사례들을 놓고 볼 때 버젓이 살아 있는 아들을 외면했다면 제국은 오히려 혼란에 빠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편, 이집트는 아우렐리우스가 황제가 되기 약 190년 쯤 전인, 기원전 30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7세(다들 잘 아시는 그 클레오파트라가 맞습니다)와 로마의 유력자 안토니우스의 연합 함대가 아그리파(뎃셍할 때 그 아그리파) 이끄는, 당시는 옥타비아누스(훗날 아우구스투스)가 세력을 잡고 있던 로마 함대에게 패배함으로 로마 제국에 편입되게 됩니다. 이때가 공식적으로는 고대 이집트의 마지막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