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판토 해전, 15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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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판토 해전, 1571년
대학교 3학년 때, <이슬람 문화론>이라는 과목에서 '이슬람 세계와 유럽 사이의 헤게모니 전환이 일어난 계기는 무엇인가'라는 시험 문제에 호기롭게도 '레판토 해전 승리로 기독교 세계의 심리적 불안감과 공포가 해소되었다'와 같은 식의 답을 써내려 간 적이 있다. 그런데, 사실 심리적인 안도감을 얻은 것을 제외하고는, 레판토 해전에서의 승리는 상당히 스케일이 큰 승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오스만 제국의 키프로스 점령이 도화선이 되었던 이 전투에서 베네치아 공화국은 주도적인 역할을 해서 (거의 전력의 60% 이상)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지만, 키프로스를 다시금 회복하지도 못한 것은 물론 계속해서 오스만의 압박에 밀려 100년 쯤 후인 1699년에는 크레타까지 잃고 코르푸를 최전선 기지로 겨우겨우 유지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오스만은 인구나 국력 모든 면에 있어서 유럽세계 전체를 합한 것에도 밀리지 않는 거대 제국이었으며, 애초에 육군을 더 중유시한 육상형 국가였기 때문에 해전에서의 패배는, 그것 설령 큰 패배였다고 하더라도 아마 금새 손실을 회복했을 것이다. 물론, 1683년 빈 공방전에서 신성동맹에게 패배한 것은 오스만 제국에게도 충격이었겠으나, 다들 아시는 것처럼 오스만은 20세기 넘어서까지도 제국의 명맥을 유지했을 정도로 국가적 역량이 엄청났었다.
레판토 해전이 역사적 영향력이 극히 미비했다고는 하나, 어쨌거나 베네치아-에스파니아-교황청 연합 함대와 오스만 제국 함대 양측이 각각 200척이 넘는 선박을 동원하여 총 400척이 넘는 배들이 서로 맞붙은, 역사상 최대이나 최후의 '갤리선 전'이었던 만큼, 이 해전은 그 이름을 듣기만 해도 지중해 역사 애호가의 마음을 설레이게 만드는 로망 같은 것을 갖고 있다.
덧 1; 역시 전쟁이나 전투, 밀리터리 관련해서는 아름다운 삽화와 사진, 도면이 가득한 Ospery 시리즈를 살펴보는 것이 정답이다. 이 해전도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덧 2; 며칠 전, 한 페이스북 친구분의 몰타 섬 여행 사진을 보고나서 '지중해 병'이 도진 것 같다. 의식의 흐름이 계속 지중해를 따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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