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세상을 살기가 어려운 것 같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이렇게 빨리 세상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사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부모님들이 하던 것을 따라하면 되는 세상이었다. 그저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이면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었다. 오늘까지 부지런함이 삶의 미덕인 것은 옛날에는 부지런하면 잘 살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세상이 바뀌었다. 내몸 열심히 움직인다고 잘산다는 보장이 없다. 평생 노가다 해봐야 제식구 밥먹이기조차 어려운 것이 지금의 세상이다.
물론 요즘도 부지런해야 한다. 그런데 머리가 부지런해야지 몸만 부지런해서는 안된다. 우직하고 듬직한 돌쇠가 농사 잘 짓고 참한 색시 데리고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야리야리하고 힘은 없어도 머리만 잘돌아가면 사는게 쉬워진 것이 지금의 세상인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상화폐 블록체인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우직하게 힘쎈놈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저 머리가 잘돌아가고 상황판단이 빠른 놈이 최고이다.
우리같은 중년들이 힘든 것이 바로 이것 때문이다. 농경시대에 태어나 그저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면 잘 살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갑자기 세상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우리의 경험은 자식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요즘 가장의 권위가 떨어진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애비가 자식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아닌 것이다. 우리 자식들이 우리처럼 살면 망한다. 자식들에게 애비처럼 살면 세상 소풍 잘하고 기쁘게 돌아갈 수 있다고 해야하는데 그게 그렇게 되지 않는다. 자식들이 그것을 더 잘알고 있다.
요즘의 자식들이 애비에게 바라는 것은 삷의 지혜나 냄세나는 노동의 경험과 같은 것이 아닌 듯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들이 살기위해 배워야 하는 데 쓰이는 돈정도인 것이다. 왜 돈있는 부모가 대접을 받는가? 왜 돈없는 부모가 홀대를 당하는가? 예전에는 돈이없는 부모도 부모 노릇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애비세대의 인간관계, 삶의 지혜는 이미 구닥다리이며 그들에게 장애물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것은 아닌가.
지금의 세대는 불쌍하고 가엽다. 그들은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스스로 찾아가야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머니가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은 나에게 큰 도움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배우고 익혔고 생각했던 것들이 자식들에게는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나의 정신적 지주는 부모님이었지만 우리 자식에게 나는 정신적 지주가 아니라 경제적 지주에 불과한 것이다. 그나마 권력과 돈이 있는 부모는 자식들에게 조금더 대우를 받을지 모르나 그런 집 자식도 알수없는 미지의 세계에서 헤메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앞으로의 세상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아직 나도 잘 모르겠다. 내 자식들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간혹 자식놈들 간의 대화를 들으면서 이 아이들의 고민이 많구나 하는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 곧 닥쳐올 노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다.
자식들에게 미래가 낮선 것인것 처럼, 나도 내 노년의 생활이 낮설기만 하다. 은퇴후 긴긴시간을 어떻게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것인가가 걱정이다.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기는 어려우니 내가 알아서 살아야 하는데 그게 언제까지나 가능할까 ? 죽을때 어떤 모습으로 죽게될까?
나도 내 아버지를 요양병원으로 보냈다. 아버지는 거기서 돌아가셨다. 우리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집에 전담 간병인을 둘 형편이 되지 못했다. 아버지 수발하다가 어머니에게 큰일이 날 상황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요양병원으로 모시면서 상황이 좋아지면 집으로 돌아오시면 된다고 달랬다. 내 가슴은 터져나갔다. 아버지는 끝까지 집으로 돌아오실 것을 기다리셨다. 마지막 아버지의 눈을 잊을 수 없다. 나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듯한 그 눈빛. 말씀을 못하셔도 나는 그냥 느낄 수 있었다. 무슨 말인지.
그리고 나도 생각했다. 그렇게 세상을 하직하겠지. 그리고 똑같은 눈으로 내 자식에게 무엇인가 마지막 이야기를 하려고 하겠지. 경제적으로 무력하게 평생을 사셨지만 그래도 아버지라서 좋았다. 아내는 부모님을 일찍 잃었다. 살면서 서러운 일이 생기면 부모없는 고아라서 자기를 무시하는 거냐고 울었다. 난 그러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설령 내가 잘못한 것이 없어도 그냥 무척 죄를 지은것 처럼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저 그래야 했다.
아버지의 죽음이 슬픈 것은 죽음 자체보다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한 상황때문이었다. 사회에서 번듯하게 활동하는 아들이 둘이나 있는 집에서 아버지를 집밖에서 돌아가시게 했으니 그게 될 법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말이다. 우리 자식들은 그런 생각도 하지 않으리라. 당연히 죽음이란 그렇게 맞이 하는 것으로 알 것이다. 나 또한 죽음을 맞이하는 병원 침대에서 집으로 돌아갈 것을 기다리는 쇠약한 노인이 될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런 상황은 슬프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까.
삶은 답이 없는 시험지같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한번도 흔들리지 않는적이 없었다. 지금도 흔들린다. 그리고 앞으로도 흔들릴 것이다. 한때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환상이나 환영에 불과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아마도 우리는 끊임없는 과도기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세상의 모든 굳건한 것들이 모두 파괴되고 있다. 그 굳건했던 기둥이 무너저 내리고 나는 그저 허공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다.
나는 그 흔들림속에서 애써 애비라는 역할을 하는 배우로 살고있다. 제대로 된 자식 노릇도 못해보고 애비가 되었다. 그 애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모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