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에는 엄마에게 참고서를 사야 한다고 거짓을 고하고 용돈으로 쓰고 싶었던 마음조차 죄책감으로 다가왔던 나였고, 성인이 되어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말고 다른 이성과 연락을 하는 것에 있어서 내 감정을 속이는 것 같았다.
다른 친구들을 꺾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나머지, 넘어지면 주저앉아있기를 반복했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모르고 계속 헤맸다. 행복은 이미 잊어버린 지 오래여서 가슴 따듯함조차 느끼지 못하는 지경까지도 가봤다. '남들 다 이렇게 살아'라고 되뇌어 봤자 내 상황들은 오히려 더 부각되어갈 뿐이었다. 고양이는 생선을 좋아한다. 사람은 보편적으로 편함을 좋아한다. 하지만, 편한 것들을 계속 추구하다간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다.
나는 보편적인 욕구까지 무뎌질 정도로 불편함을 추구했다. 남을 위하는 것을 좋아했다. 착하게 보이려고, 나쁘게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내가 없었다. 주변에서 하는 말들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내 안의 소리는 모두 무음이었다. 주변에서 인정하는 '나'만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착하게 남의 말 잘 듣고 고개 숙이는 사람. 그게 나였다.
내가 관심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내가 관심 있던 게 아니었다. 내가 좋아서 선택했다고 생각한 것들도 모두 내 안에서 나온 것들이 아니었다. 다른 길이 아니었다. 그저 막다른 길을 맞닥뜨렸다. 다시 돌아갈 순 없고 나아갈 수도 없었다.
그러다 내가 살아온 방식과는 전혀 다른 철학을 접했다.
'벽을 넘는 법을 배워라.'
앞의 거대한 벽을 앞두고 서 있는 내게 유일한 해결책. 벽을 넘어설 '나'를 단련하기. 처음에는 한 발짝 띄는 것조차 사치였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내가 해선 안 되는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의문들이 내 머리를 잠식해 갈 때쯤, '그냥 해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니, 그냥 어떻게 해? 처음에는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걱정투성이에 나의 평판에 대한 생각을 도저히 미룬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걸 그냥 하라고?'
'그냥 해.'
내 머릿속은 그렇게 다른 변명들을 치우고 나를 위한 목적 하나만을 두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나 자신과 비교하자'
쓸데없이 우열의식이 가득했던 나는 이 생각으로 '눈치'라는 것을 극복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말자. 사람들은 내 얼굴에 그리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아름다운 색깔들로 나를 채워갔다. 두려웠던 것들을 마음속에서 몰아내고 아름다운 나 자신으로 채워갔다. 어찌보면, 사람은 편함을 추구하는 데에 있어서 '나'를 빼먹을 수 없는 것 같다. 애초에 이전의 나의 상태가 불편한 상태이고 지금이 편한 상태가 되겠다.
고양이는 생선을 좋아한다.예전의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이, 그런 편함이 본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인 것을 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나'이기를 추구하고 싶어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되는 게 좋다고, 행복하다고. 또한 내가 그것의 고통스러움을 느껴봤기에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가 되었든,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도와주고 싶다.
나는 나의 허물들을 털어내고 비로소 내가 될 수 있었다. 단순한 편함이 아니라 온전한 나로 버무려진 편안함을 이젠 알고 있다. 불편해도 편안하다는 것이 신기할 때가 많아졌다. 물론, 나도 극복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글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나를 좋아한다. 이 사실만으로도 내가 살아갈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