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1996년에 몇살이였냐? 그 때 강릉에 무장공비가 침투했는데..."
"저... 부장 그 얘기 전에 말씀 하셨습니다."
"마 짜식아 들어 본 얘기라도 또 들어. 인마 나는 무용담이 이것 밖에 없어. 앞으로 자꾸 자꾸 듣게 될 거야. 그리고 너 인마 나한테 부장이라고 부르지 마. '김선배' 하면 되는 거야. 김선배 해봐."
김선배는 앞으로 자꾸자꾸 듣게 될 거라고 했지만, 선배의 단 한 건 특종 이야기는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됐다. 내 생일이었던 지난 15일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2015년 어느날 회식이 일찍 끝나 귀가하던 중, 동네 사람인지라 집 앞 역에서 우연히 만나 끌려간 호프집이 그와의 마지막 자리였다.
그가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는 단 하나의 특종은 요즘 같은 세상에선 어쩌면 한 줄 기사도 되지 않는 이야기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당시 국군 첫 사망자의 신원을 파악해 단독으로 보도했다. 지금 같으면 국방부가 알아서 공개를 해주거나, 반대로 망자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보도하지 않았을 수 있는 내용이다.
취재 방식도 참 옛날스러웠다. 다짜고짜 해당 부대 연락병에게 전화해서 반말을 하면서 군 사령부인지 육군본부를 사칭해서 알아냈다고 했다. 그게 먹힐 수 있었던 건 그가 이른바 '목욕탕 목소리' 혹은 '동굴 목소리'를 가졌기 때문일 거다.
고리타분하기 짝이없는 이야기였던 데다, 같은 얘길 몇 번씩 들어 다 외울 정도였으니 지루하고 하품이 나올만 했지만, 그는 참 이야기를 재밌게 했다. 기사가 나간 뒤 타사 기자들에게 가판을 보여주며 너스레를 떨었던 일, 나중에 유가족이 보험금 지급 문제로 보험사와 다툴 때 기사 내용을 근거로 활용했다는 일 등을 거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이야기했지만 다시 들어도 재미있었다.
그는 분명 옛날 사람이었다. 나쁘게 보면 '구악'이었을 수도 있다. 출입처 민원을 받아주고 저녁을 얻어먹곤 했다. 술도 무지하게 먹었다. 그래서 간에 병이 났을 거다. 병이 있는데도 몸을 돌보지 않았다. 누가 말려도 "기자가 다 그렇지 인마" 했을 거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도 발병 뒤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는 이미 취해 있었고, 맥주 딱 한잔만 하고 가자고 했다. 하지만 그는 소주를 마셨다.
김 부장은 특별히 경쟁이 심하지 않은 회사에서 주요 보직 주변을 맴돌았다. 나중엔 편집국 밖 사업부서로 내보내졌다. 소위 '에이스'와는 거리가 먼 기자였다. 하지만 일은 똑부러지게 했다. 그가 그 동굴 목소리로 지역 주재기자들에게 호통을 쳐대던 때에 지방 기사들이 그나마 기사 같았다.
얻어먹고 다녔어도 혼자만 먹고 입 닦진 않았다. 저녁 얻어먹으러 가는 길에도 후배가 눈에 띄면 데려가서 배불리 먹였다. 난 그 때 복불고기란 음식을 처음 먹어 봤다. 몸도 안 좋고 이미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는 길이었지만, 같은 동네 사는 후배를 집 앞 지하철역에서 딱 만났는데 그냥 보낼 수 없었다. 옛날 사람이어서, 학연이 있는 후배한텐 더더욱 그럴 수 없었다.
편집부에 같이 있다 회사를 떠난 동기에게 김 부장 별세 소식을 전했다. 동기는 조의를 전하면서 "얻어먹은 밥값에 반도 못 해 드리네"라고 했다. 후배들은 "요즘세상"을 운운하며 선배들을 비판하지만, 요즘 세상 선배들 중에 후배들을 그리 끔찍이 생각하는 기자가 있을까 싶다.
참 따뜻한 선배였다. 하지만 그가 병가로 회사를 쉬고 연락이 끊어진 동안, 난 결혼할 때도 전화 한 번 하지 못했다. 그의 부고를 듣고서야 인사를 드리게 됐다. 참 나쁜 후배다. 이렇게라도 뭔가 쓰며 그를 기억하지 않고는 도무지 그 영정을 마주할 수 없을 것 같다.
김 선배,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