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고통은 그 주어지는 상황에서 그 해결책도 함께 주어진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 가지 문제로 고통당하고 계시다면 그 문제의 해결책은 그 문제가 시작되는 즈음에 준비됩니다. 그 고통의 발단을 찾아보면 그 고통이 해결됩니다. 우리 속담에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고통의 문제는 바로 우리들의 신앙에 해결책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고통이 가장 극심하게 느껴지고 다고 오는 것은 바로 우리들에게 은혜가 없을 때입니다. 우리가 성령충만하면 고통보다는 기쁨과 환희가 넘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기분이 좋고, 세상에 감사하지 않을 것이 없고, 이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은혜 받으면 세상에 부러운 것도 없고, 질투나 욕심도 사그러 듭니다. 이처럼 고통 해결의 시작은 은혜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의 해결책의 Key는 신앙에 있습니다. 고통이 시작될 무렵 우리들의 신앙의 상태와 영적인 성숙도를 점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점검에 따라 고통도 고통이 아니라 감사가 되고, 문제도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근육운동을 해보셨습니까? 헬스장에서 복근이나 이두박근 등의 운동을 하면 그 운동을 왜하나 싶을 정도로 아주 강한 압박이 다가옵니다. 땡기고 아프고 힘들고 완전히 사람을 푹푹 삶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근육운동이 지방을 태우고 근육량을 늘려 신체가 더 건강하게 하는 작업니다. 고통과 함께 오는 것은 바로 우리 건강한 육체입니다. 또한, 근육이 건강하고 훈련되어 있어면 운동을 해도 다시 땅기지 않고 아프지도 않습니다. 계속해서 운동을 하고 건강한 육체를 유지하는 사람은 운동이 고통이 아니라 몸을 더 건강하고 상쾌하게 하는 좋은 훈련이 되는 것입니다.
아픔과 고통, 땡기고, 얼얼하고 타는 듯한 고통에 뒤에는 건강한 근육들이 살아나는 것처럼 우리 삶의 모든 문제들과 당면한 고통들 앞에서 보여지는 자세가 건강이나 하니면 비실한 약골로 사느냐를 판가름 하게 될 것입니다.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다른 한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 능히는 완전히, 뛰어 넘어서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고통을 고통으로 여기지 말고 즐기라는 것입니다. 능히 감당하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뒤나스다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는 동사 “뒤나마이”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뒤나마이는 “할 수 있다”라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무언가 하고자 하는 태도와 의도까지도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결국 능히 감당한다는 것은 못할 것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빌립보서 4:13절의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할 수 있느니라”의 말씀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고통도 은혜로 지배하고 마음에 새겨진 말씀의 틀에 놓으면 그까짓것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존 앨런이 쓴 “미각의 지배”라는 책을 보면 참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와있습니다.
사람의 의 뇌세포는 아삭함에 미쳐있다는 것입니다.
『미각의 지배』라는 책을 보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바삭한 맛을 좋아한다고 한다. 얇은 껍질로 덮여 있는 곤충을 맛보면서 바삭한 맛을 알게 되었고 고기를 불에 구워 먹게 된 것 역시 바삭한 맛 때문이라고 한다. 채소 역시 싱싱한 것을 고르는 것은 아삭한 채소를 통해서 씹는 맛을 즐기려는 본능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바삭한 음식을 먹으면 혀뿐만 아니라 음식을 씹을 때 나는 ‘바삭’ 소리에 뇌가 자극되어 소리가 나지 않는 음식을 먹을 때보다 덜 질리게 된다고도 한다. 우리가 튀김을 사랑한 이유는 그저 맛있어서 아니라, 본능이 원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수많은 요리사들은 수많은 연구와 시행착오를 거쳐 ‘바삭한 튀김’을 만들어내는 각종 팁들을 개발해 낸 것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우리들의 감각은 피하고 본능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맛을 찾아가고, 그 소리, 그 냄새, 그 맛에 스스로 열광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적 미각입니다.
가장 맛있는 튀김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배고픔의 고통입니다. 배고프면 눅눅한 튀김도 세상에서 가장 바삭한 튀김처럼 맛있어 지는 것입니다. 그 배고픔의 고통를 지나왔기에 어떤 것도 맛있을 수 있는 자신의 감각의 훈련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영적인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인으로 고통을 겪고, 갈등을 겪고, 문제를 넘어서고 난 후에 다가오는 “그래! 하나님이 하셨구나. 나를 사망에 음침한 골짜기로 몰아 넣은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고 해를 입히지 않으시고 그들의 머리가 되게하셨구나.”라는 고백이 나오면 그것은 바로 세상에게 가장 고귀한 영적인 쾌락을 맛보는 것입니다. 이 영적인 쾌락이 있을 때 신앙은 쑥쑥 성장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