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신이 몸을 가진 존재임을 강렬하게 체험하는 때가 있다. 그건 리스크를 경험할 때다. 무언가를 잃을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사람은 자신의 몸을 인식한다.
몸을 인식한다는 건 살아 있다는 걸 체감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죽어 있던 몸이 비로소 살아움직인다. 시간은 느리게 간다. 그건 시간 자체가 느리게 가기때문이 아니다. 또한 우울하기 때문에 느리게 가는 것도 아니다. 그건 그 리스크로 탱탱한 시간 자체에 우리 의식이 집중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에 집중하면 시간은 늦게 간다. 리스크가 높아지면, 그 리스크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다가, 시간의 흐름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그 시간이 빨리 흐르길 바라면서.
그러나 이건 보통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다. 조금 더 훈련된 사람은 다른 방식으로 직감의 날을 세운다. 뇌에는 청반이라는 시스템이 있다. 이 청반은 의식이 미처 분석하기 이전에 새로운 변화를 포착한다. 이전의 패턴이 무너지고 새로운 패턴이 시작되는 그 때를 포착하는 시스템이다. 이를 직관이라 불러도 좋다.
이는 마치 운동선수들이 경기 흐름 자체에 집중할 때 생기는 경험과도 같다. ZONE 경험이라고도 부른다. 의식으로는 할 수 없는 공이 날아오는 순간 순간이 보인다. 운동장의 잔디 포기 하나 하나가 보인다. 공기의 흐름이 보이기도 한다.
어떤 사람에게 리스크는 자기가 살아 있는 도구이다. 그에게 리스크가 없으면 그는 살아 있지 못하다. 그래서 리스크에 탐닉된다. 그러다가 그 리스크가 너무 고통스럽기에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애쓴다. 시간자체에 매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 리스크는 직관의 날을 더욱 예리하게 하는 소재다. 이전의 패턴이 무너지고 새로운 패턴이 생기는 그때를 포착하는 감각의 시간이다. 그는 심장이 리드믹하게 뛰는 소리를 듣고 있다. 고요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