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게티 센터Getty Center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게티 센터는 석유재벌이었던 폴 게티가 자본을 출연하여 LA의 산 정상에 만든 박물관이자 정원이다. 이 센터가 인상깊은 것은 그 정원때문인데 그 정원은 매우 편안하고 좋은 인상을 주는 곳이었다. 그 이유는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양적 그 중에서도 도교적 철학을 가미시켜 만든 정원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즉 게티 센터의 정원 중심에는 물이 흐른다. 그 물은 게티 센터가 있는 건축물 위에서 모여서 아래에 있는 정원으로 흐른다. 그 정원이 흐르는 곳은 노자의 곡신을 생각나게 한다. 즉 계곡을 생각나게 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곡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곡신은 죽지 아니하니 이것을 일러 현빈이라 하고 현빈이 들고 나는 문을 이것을 천지의 뿌리라 이르니 이어지고 이어져서 늘 존재하는 것 같으니 쓰더라도 번거롭지 않느니라. 谷神不死를 是謂玄牝이오 玄牝之門을 是謂天地根이니 綿綿若存하야 用之不勤이니라).
그 말처럼 가운데에서 물을 모은다. 이 계곡처럼 생긴 곳을 통해 모은 물은 아래로 흐른다. 그리고 그 흐르는 곳마다 나무와 풀이 무성하고 궁극에는 커다란 자궁인 생명의 미궁에 이른다.
건축신경학자 에스더 M. 스턴버그는 게티 센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술관 벽을 타고 물이 폭포처럼 흘러서 아래쪽에 있는 원형 연못에 고인다. 개울 위로는 좁은 다리가 십자형으로 교차하며 지나가는데, 다리의 녹슨 난간이 그 밑의 시원하고 조용한 물과 대조를 이룬다. 정원 바닥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무 그늘 속으로 들어갔다가, 따가운 햇살 아래로 나왔다가, 개울물 소리와 냄새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한다. 그래서 주변 요소들과 자신의 관계가 계속 변하는 것을 잘 느낄 수 있다.”
에스더 M. 스터버그가 말한 것처럼 게티 센터의 경우 자기 주체성이 계속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변화 그것은 게티 센터가 추구한 바일 수도 있다. 왜냐면 게티 센터 정원 아래에는 잘 보이지는 않지만 다음과 같은 시가 적혀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현재일뿐/결코 반복되지 않는 것/ 언제나 변화일뿐/ 결코 전체가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것(ever present/never/twice the time/ ever changing/never/ less than whole)"
게티 센터의 정원을 거닐면서 그 정원이 주는 미묘한 시선의 변화와 그 변화에 따른 자아와 객체가 만나는 경험 자체의 변화를 누리다 보면 어느새 기분이 편안해진다. 그것은 게티 센터가 정원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미묘하게 변화시키고 우리를 매혹시키기 때문이다.
명당이라면 이곳처럼 여성적 에너지가 삶을 살리는 곳, 이곳이 생태적 명당이다.
<게티센터 정원의 여성성, 그리고 풍수지리>
깜 놀랐다.
왜 게티센터에 오면 사람들이 더 에로스가 넘치는 지
궁금했는데..
게티센터의 정원을 보고 깜짝 놀랐다.
게티센터의 정원은 여성의 음부를 상징하고 있었다.
풍수적으로 여성의 에너지를 상징하고
그 물이 흐르는 것을
그 풍성한 생명력, 에로스가 흘러 넘치는 것을 상징하고 있었다.
그 생명이 흘러가서 나무와 만나 주변의 생명을 살린다.
그리고 이를 게티센터 건물이 좌청룡, 우백호로 대음순/소음순처럼 감싼다.
그리고 곳곳에 숨겨놓은 자기부정, 이식천식, 시비시의 철학들
즉 도를 도라 하면 도가 아니라고 하는 이중부정의 철학들을 숨겨놓았고
곳곳에 관음적 시선과 그 시선을 역으로 뒤짚는 응시를 나타냈다.
게티 센터 입구에 보이는 두가지 상,
하나는 여성이 깜짝 놀라는 상과 남자가 개구리를 들고 있는 상은
남성의 다소 거칠고 노골적인 에너지를 여성의 부드러움으로
감싸고 풀어버리는 의미를 지닌다.
놀랍고 어메이징한 경험이라기 보다는 체험이었다.
완죤 도교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