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먼 친척 중에는 튜니컷이라는 우렁쉥이가 있다. 튜니컷에는 작은 뇌가 있다. 원시적인 뇌라고 불리워도 좋을 것이다. 튜니컷이 태어나면 미숙한 몸을 움직여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쳐 다닌다. 뇌는 어떤 곳이 가장 영양분이 풍부한 곳인지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런 곳을 발견하면 정착한다.
그 다음에 뇌는 어떻게 될까. 재밌게도 튜니켓은 뇌를 흡수한다. 이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뇌는 필요없어진 것이다. 왜냐면 영양분이 충분한 곳을 이미 찾았고 그곳에 뿌리를 박고 남은 생을 살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의 뇌가 이성적 판단을 위해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뇌의 여러 기능 중에 이성적 판단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심지어 이성은 수많은 자극에 의한 감정과 충동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충분한 이유를 만들어 내는 하수인이다.
어쩌면 인간은 튜니켓처럼 영양분이 충분한 곳을, 즉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곳을 발견하고 나면 뇌를 흡수하는 진화전략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왜냐면 뇌는 독자적으로 운영하기에는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뇌는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곳을 찾아 다니데 있어 매우 실용적인 장기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게 아니다. 신체의 움직임을 계획하고 통제하는게 뇌의 주된 목적이다.
그런데 플라톤 주의와 그 각주로 인해 형성된 신고전주의 경제학에서는 이성적 사고를 하는 합리적 인간을 전제한다. 합리성은 인간이 행동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시장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합리적 인간이 아니라 다분히 비합리적이고, 합리란 수단에 불과한 그런 사람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그 시장을 알기 위해서는 자기 몸을 알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