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사丁巳일입니다. 작은 촛불이 켜 있지만 그것을 받치고 있는 것은 뜨거운 양의 기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좀 더웠습니다.
봄이 되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습니다. 보티첼리의 봄입니다. 이 극화와 같은 작품은 오비디우스가 전하는 변신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변신의 주체는 제프로스와 클로리스입니다. 바람의 신 제프로스는 클로리스를 보고 한 눈에 반합니다. 클로리스는 숨을 쉴때마다 잎에서 꽃이 피어나는 정령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를 납치하고 아내로 삼아 버리고 맙니다. 그림의 오른쪽 끝에 보면 제프로스가 클로리스를 납치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러나 제프로스는 클로리스를 억지로 납치한 것에 대해 후회를 합니다. 반성을 합니다. 그리고 그녀를 꽃의 여신 플로라로 변신시키고 그녀에게 봄이 영원히 계속되는 정원을 만들어 선물했다는 전설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체취에서 향기를 맡아 본 적 있는지 궁금합니다. 과학적으로도 어울리는 짝에게서는 향기가 난다고 합니다. 이는 면역 시스템을 구성하는 유전자 체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른 면역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짝에게는 향기가 난다고 합니다. 그래야 둘이 짝이 될 때, 즉 유전자가 섞일 때 더 방어력이 좋은 면역체계를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대인들은 향수를 많이 씁니다. 그래서 상대의 체취를 맡고 민감하게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퇴화되어 있습니다. 체취는 눈으로 보는 인식이전에 후각에 전달되고, 후각은 의식 이전에 무의식에 호소하는 감각기관입니다. 인류의 진화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그 감각이 퇴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헬렌 피셔 같은 분은 그래서 걱정이 많습니다. 인류의 면역체계가 점점 더 약화될 것을 염려합니다.
여하튼 제프로스는 클로리스에게 향기를 맡은 듯 합니다. 그래서 그녀를 억지로라도 자신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아주 완고하지는 않았나 봅니다. 자기 짝을 꽃의 신으로 만들고 그녀에게 영원한 봄인 정원을 주었으니 말입니다.
그림에서 오른쪽 끝에 보이는 클로리스는 왼쪽의 플로라와 동일한 인물입니다. 이는 여성이 욕망을 받아들이고 변화하는 과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자기 안에 있는 리비도를 받아들이고 주체가 될 때 그녀는 플로리와 같이 당당해 집니다. 우아하게 정면을 향해 봄의 원피스를 입고 있는 모습입니다. 봄은 춘분을 지나면서 음과 양이 만납니다. 춘분은 음과 양이 같아지는 때로 중국에서는 이때 남녀가 많이 연애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봄이라는 뜻을 가진 중국 운남의 쿤밍(春城)도 역시 낭만의 도시입니다.
보티첼리가 펼쳐놓은 극화에서 볼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그림의 왼쪽에 있는 세 여신입니다.
왼쪽부터 관능, 순결, 아름다움을 상징합니다. 이 여신이 함께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취고 있습니다. 가운데 순결을 상징하는 여신의 어깨 선이 보이는 것이 성적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관능의 여신은 그 여신의 손을 잡고 있습니다. 이처럼 대립될 것 같은 두 에너지가 하나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어질 때 아름다움이 탄생합니다. 그 탄생된 아름다움은 위로 솟구치고 있습니다. 가냘픈 손이 위로 올라가고 있듯이 말입니다.
가냘픔은 강함의 반대입니다. 아직 완전해 지지 않은 그 무엇입니다. 실루엣입니다. 정해지지 않은 천과 같은 미끈함을 가지기에 미래에 대한 섬세함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 섬세함으로 말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가냘픈 손은 애처로움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줍니다. 어여쁘다라는 우리 말이 애전에 안타깝다라는 뜻이었다니 뭔가 통하나 봅니다. 그래서 가냘픈 손 뒤에서 비너스가 등장하는 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