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메시는 힘센 우르크의 왕이다. 이 왕은 모든 전쟁에서 승리했다. 한마디로 전능한 자아였다. 그런데 친구 엔투카가 그들이 저지른 오만에 대한 벌로 죽었다. 엔투카는 길가메시의 또 다른 자아 였다. 전쟁에 대한 승리를 거두고 나서 신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황소를 바쳤지만 여신의 분노는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친구를 관찰하던 길가메시는 죽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현자를 만나러 길을 떠난다. 그러나 그 현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강을 건너야 한다. 강을 건널려고 배를 타기 위해 강에 왔을 때, 신비한 뱃사공 우르샤나비가 나타났다. 우르샤나비는 길가메시에게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신비한 돌을 버리고 300개의 장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신비한 돌을 버린다는 것은 전능함을 버린다는 것이다. 즉 자기의 관념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주술적 전능함을 버리는 것이다.
"주술적 사유에서는 사물에 대한 관념이 사물보다 더 중요하다. 관념에서 이뤄진 것은 모두 그 사물에게도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관념들 사이의 인과관계는 사물들에서도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 - 프로이트
즉 생각의 인과관계를 버리라는 말이다. 합리적으로 기대해도 그건 길가메시의 관념일 뿐이다. 주술적 전능감에 물들어 있던 길가메시는 그 신비의 돌을 깨뜨린다. 그리고 두 손으로 나무를 벤다. 300개의 장대를 벤다. 그 장대 중 120개를 뽑아 배를 밀고 가는데 쓴다.
시장은 우리의 기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 기대는 주술과 같은 것이다. 어떤 분석과 어떤 패턴은 주술적 사고의 다름아니다. 그 주술적 편향을 버리고 몸을 쓰는 법을 알 때 우리는 강을 건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물론 어떤 이는 주술적 전능함에 갖혀 있을 것이다.
- 스팀잇이란 공간도 마찬가지다. 전능한 자아를 논리로 유지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를 생성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