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잇의 무의식] 공공재 게임으로 본 문화 형성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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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Cézanne, Game Players]

이젠 어뷰징 논란이 방향을 잡아가는 느낌이네. 아마도 을묘월을 지나고 병진월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가해. 을묘월은 나무이고 병진은 그 나무의 기운이 성숙해지는 때이거든. 나무는 곡직의 성질이 있다고 해서 성장의 기운이 강해. 추운 겨울을 지나고 새싹이 나기 위해서는 위로 상승하는 기운이 강하겠지. 그러다 보면 이러 저리 부딪치기도 하는 거고. 그러니 이 스팀잇 공간 안에서 여러 얽힘과 섥힘이 생기는 거고. 이젠 병진월이야. 즉 그동안 논란이 진이라는 토의 기운을 통해 갈무리 되고 햇볕 속에 영글어 가는 거지.

공공재 게임이란 게 있어. 협력에 대해 연구한 실험이야. 실험경제학에서 연구하는 분야인데, 이곳 스팀잇에도 어울릴 주제야. 게임의 규칙은 어떤 공동체가 있어. 그리고 모두가 돈을 내는 거야. 그러면 두배로 돌려받아. 그것도 각자. 예를 들어 10만원씩 열명이 내면 100만원이잖아. 그러면 200만원을 돌려 받는 거야. 그럼 각자 20만원의 이익이 생기겠지. 마치 스팀잇에서 각자 글을 쓰고 보팅을 하면 그렇게 하는 사람이 되돌려 받는 것처럼.

그런데 이때 어떤 사람이 욕심이 생겨. 자기 돈은 안 내고 나중에 돌려받기만 하기로 마음 먹는 거야. 즉 처음엔 10만원씩 내서 200만원을 돌려 받았잖아. 그런데 게임을 하면서 어떤 사람이 안 내는 거지. 그게 한 사람이면 90만원이 모여서 180만원을 돌려받잖아. 그럼 각자 18만원씩 받겠지. 물론 안 낸 사람은 기존에 가졌던 10만원 + 18만원이니깐, 더 이득이겠다. 그치?

그럼 어떻게 될까. 점점 안 내는 사람이 많아질 거야. 그러다 보면 내는 사람은 적어지고, 자기 혼자만 희생하려는 사람은 없어지겠지. 그렇게 되면 두배로 받을 수 있는 판 자체가 위태롭게 될 거야.

게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실험경제학자들이 해 보니, 무임승차 하는 사람에게는 처벌할 수 있게 하는 거야. 그 처벌을 받으면 그 사람은 다시 내게 될 거야. 그러는 게 이익이 될테니 말야. 그렇게 하면서 게임은 계속 지속되는 거지. 즉 **'협력을 위해서는 처벌이 있어야 한다' **라는 결론을 얻었어.

그런데, 재밌는 건 항상 협력이 증가하는 건 아니라는 거야. 문화마다 다르단 애기지. 그래프를 하나 보여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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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래프는 조슈아 그린의 '옳음과 그름'이란 책에서 가져왔어. 그래프에서 보듯이 공공재 게임 횟수가 늘어나고, 무임승차 하는 사람을 처벌하면서, 협력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어.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야. 이스탄불, 리야드, 아테네 같은 경우는 별로 변동이 없어. 오히려 줄어들기도 하는 거지.

서울은 어떨까. 처음엔 낮지만 게임이 진행될 수록 높아지고 있는게 보이지?

말하자면 공공제 게임에서 협력의 증가도 문화와 연관되어 있다는 거야. 즉 처벌과 보상에 대한 사회 문화가 형성되어 있을 때 협력할 수 있다는 거지.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문화가 그걸 뒷받침 해주지 않으면 협력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결론도 가능하지. 그리스가 IMF때 우리와 다른 대응을 했잖아. 우린 금모으기를 했는데 그들은 그렇지 않았잖아. 좀 다른 문화이지?

스팀잇의 어뷰징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들이 있었잖아. 내가 바라는 건, 문화로 해결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애매모호하게 들리지만 그게 우리의 성숙도라고 생각해. 감으로 해결하는 거지. 퍼지식으로. 이쯤되면 어뷰징이고 이쯤이면 어뷰징이 아니다라는 어떤 감으로 말야. 왜냐면 이미 다운보팅과 그보다 더 무서운(적어도 한국인의 심성에는) 평판하락이 있으니깐.

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세세한 규칙으로 해결하려 하는 건 별로 세련되어 보이지 않아서 말야. ^^ 촛불집회까지 했는데, 감이 죽은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