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 는 북유럽 신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어. 그 신화에 보면 절대 반지가 나와. 반지의 제왕에서와 같은 그런 절대반지인데, 틀린점은 이 반지는 보물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다는 거야. 즉 풍요의 원천이라는 거지.
본래는 라인강 속에 있었고 라인의 처녀 3명이 그 비밀을 지키고 있었어. 난장이 알베리히는 그녀들을 사랑했지. 그런데 알베리히는 그녀들이 갖고 있는 비밀을 안 거야. 즉 사랑을 부정한 자 만이 그 반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걸 안 거지. 그래서 알베리히는 그녀들에 대한 사랑을 부정하고 그 반지를 손에 넣게 되. 그 반지로 부터 나오는 이야기가 니벨룽겐의 반지 오페라야.
시작부터 재밌는 건 인간의 무의식 구조 안에 풍요라는 이해가 나오기 때문이지. 즉 풍요의 원인은 스스로 뭔가 만들어 내는 거야. 보물은 이 세계에 실존하는 거잖아. 그 보물을 만들어 내는 게 반지라는 거야. 보물이라는 어떤 재산을 넘어선 원리 같은 거지. 그걸 만들어 내는 힘. 성령. 그런 거.
쉽게 생각하면 땅에서 뭔가 만들어 내잖아. 그 생명력이 풍요의 원천이라는 거야. 그리고 이 생명의 원천은 순수하게 증여되지. 그냥 주어진다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황금같은 감각에 잡히는 것들이 만들어 진다는 거야. 그리고 그 황금은 교환될 수 있는 것들이지.
여기서 교환이전에 풍요의 원천으로서 증여가 있어야 함을 알 수 있어. 이게 인간의 무의식이란 거지. 인간무의식은 증여가 없는 교환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거야. [밀의지식密儀知識]을 시작하면서 암호화폐는 인간 무의식을 반영한다고 했잖아.
우리는 우리의 무의식에 대해 너무 억압했습니다. 자본주의의 선형적 교환논리가 이미 그렇습니다. 대칭구조로 되어 있는 무의식은 교환이 아니라 증여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암호화폐가 생겨나는 지금, 우리 무의식의 논리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암호화폐라는 게 경제적인 측면에서 거래비용만 감소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선형적 사고에 도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가격변화 자체가 이미 선형적이질 않습니다. 스팀잇의 보팅이 교환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사고구조의 측면에서 봐야 합니다. 따라서 [밀의지식]이라는 카테고리에서는 그 대칭의 구조에 대해 나누겠습니다.
"너의 광기로 하여금 너의 이성을 감시하게 하라." - 라캉
즉 암호화폐, 그 중 스팀잇의 구조는 인간 무의식의 증여와 교환이라는 논리를 드러내고 있다는 거지. 사실 자본주의는 증여는 상실하고 교환만 지나치게 강조된 의식의 구조였거든. 마치 사랑을 부정하고 반지를 손에 넣은 난장이 처럼말야. 그런데 인간 존재 자체가 무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증여를 원해.
누군가 댓가 없는 선물을 주기 원한다는 거지. 스팀잇에서 예상치 못한 보팅을 받게 될 때 기분이 고양되잖아. 그게 증여야. 그걸 바로 같은 값으로 응답해 주면 그건 교환인거지. 그래서 예상치 못한 보팅에는 인간적인 마음을 담아서 응답하잖아. 댓글을 쓰던가 그런 식으로. 그게 증여를 통해서 표현되는 인간적 교류인셈이지.
여기까지 했으면, 스팀잇이라는 플랫폼이 좀 대단해 보이지 않아? 그리고 쫄지마. 인간의 존재 구조를 믿으라고. 가격이라는 환상에 흔들리지 말자는 말이지.
PS. 보이차 97 난창강을 마시니 양쪽 코가 뚫리는 느낌이네. 이다와 핑갈라, 혹은 좌뇌와 우뇌가 연결되는 느낌. 이효리가 좋아하는 보이차라고 하니 참고하면 좋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