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은 인간의 마음이 세계과 만나는 경계에서 생긴다. 따라서 감각은 변화하기 마련이다. 마음이 변하기 때문이다. 지구 자전축에 깃들어 있는 마음이 자전의 에너지로 변하기 때문이다. 감각이 변하는 건 또한 세계가 변하기 때문이다. 세계는 멈춰져 있지 않고 흐르기 때문이다. 감각은 그래서 변화의 경계에 있다. 따라서 감각을 믿으면 안된다. 마음과 세계가 만나는 경계에서 발생되는 것일뿐이다. 즉 감각주의로 흐르면 안된다. 엄밀한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번 1악장이 그러하듯이.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인 32번(OP 111). 이에 대한 평은 대개 이렇게 요약된다. 1악장은 내면의 갈등을 2악장은 피안을 의미한다고 말이다. 내면의 갈등이 없으면 피안도 없을 것이다. 말처럼 1악장은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투쟁이라기 보다는 힘참과 굿셈으로 표현하는 게 나을 거 같다. 영웅적인 1악장. 2악장은 섬세하다. 1악장에 엄밀하게 추구되었던 푸가적 굿셈이 2악장에서는 저 피안으로 인도한다. 엄밀한 구조가 없이는 저 피안에 닿지 않듯이 말이다.
보통 피아노 소나타는 3악장으로 구성된다. 전개 - 반전 - 재현. 그러나 그의 마지막 소나타는 2악장이다. 왜 그랬느냐는 말에 베토벤은 '시간이 없어서'라고 대답했다. 굿셈과 섬세함. 양과 음. 두가지를 담았으니 더 이상 무엇을 담을까 싶다. 시간은 음과 양이 분화될 때 생기는 것이라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