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레버넌트가 개봉되었을 때, 논란이 있었어. 그 논란은 곰이 주인공 글래스를 강간하는 장면이 있다는 논란이었지. 실제로 영화를 보면 둘 사이의 관계는 폭력적이지만 친밀하게 나와. 디카플리오도 'feel the intimacy of both man and beast'라고 표현하지. 그런데 그게 강간일까. 아니면 친밀감일까.
맥락을 따라가보면 우리가 갖고 있는 인식의 한계가 드러날 수 있을 거 같아. 영화 초반에 글래스는 사슴을 사냥해. 그러나 그의 사냥은 인디언의 사냥이 아니야. 즉 어떤 예를 갖춘 사냥이 아니라 단순히 고기를 얻기 위한 사냥이지. 그래서 사슴을 사냥하고 나서도 사슴을 거칠게 손질해. 인디언들에게 사슴은 그냥 사슴이 아니라 자연의 힘을 가진 존재인거야. 그 존재를 죽였을 때는 예를 갖추고 그 영혼이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지. 하지만 글래스는 인디언 마을에서 지낸 경험이 있음에도 그것까지는 체득하지 못한 거야. 그에겐, 그리고 그의 동료인 백인들에겐 사슴은 그냥 고기일 뿐이었던 거지.
곰이 글래스를 공격한 것은 그런 글래스의 잘못에 대한 자연의 응징이야. 그러나 곰은 단순히 응징만 하는 게 아냐. 글래스의 몸에 자신의 발톱으로 깊고 깊게 상처를 내. 백인의 상징인 글래스의 몸에 상처를 내는 거지. 상징을 찢어버리는 거야. 조르쥬 바타이유가 말했듯이, 폭력적인 에로티숨이야.
갑자기 에로티숨이라고 하니 좀 의외지? 에로티숨은 관계야.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 자연과 만날 때, 상징의 금기를 넘을 때 발생하는 에너지 같은 거지. 그래서 에로티숨은 죽음까지 파고든 삶인거야. 즉 글래스의 몸에 덮혀진 옷을 찢고, 하얀 가죽을 찢음으로써 상징을 넘어가는 거야. 말하자면 저건 고기, 이건 인간이라든가, 저건 야만 이건 문명이라든가. 그런 금기의 선을 횡단하는 거지. 거기서 발생하는 에너지의 강도intension가 에로티숨이야.
그럼 이젠 알겠지. 이 장면은 강간의 장면이 아니라 에로티숨의 장면이라는 걸. 즉 서로 주고 받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에로티숨이라는 거지. 강간이라는 건 다분히 어떤 대상에 대한 일방적 폭력이니깐 적용이 안된다는 말이야. 그리고 그렇게 보는 인식자체가 어떤 편향을 담고 있다는 거지. 말하자면 친밀감에 의한 관계가 아니라 폭력과 대상에 의한 관계로 밖에 읽을 수 없는 피곤함이 읽히는 거야. 강간이라고 하는 건 권태스러운 평이지.
그럼 오늘도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을 누리길 바래. 그렇다고 禮節없이 함부로 할퀴고 그러진 말고.
참고 : [밀의지식密儀知識] 풍요를 얻는 야생적 방법 : 예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