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번넌트에서는 두가지 계열이 나와. 하나는 주인공 글래스가 이끄는 인디언의 계열이야. 다른 하나는 피츠제랄드가 행하는 계산적 이성의 계열이야.
인디언의 계열은 세번의 죽음와 탄생을 거쳐. 처음에는 사슴의 죽음. 이 죽음에서 글래스는 백인의 총구를 사슴에게 겨눠. 즉 사냥감으로 사슴을 사냥하지. 고기를 얻기 위한 대상. 두번째는 곰이 죽이는 에로틱숨한 순간이야. 곰이 사는 영역에 들어간 글래스는 속에서 성으로 넘어간 셈이야. 그곳은 특별한 교감의 공간이야. 자기 몸에 새겨진 상징이 곰의 폭력에 찢겨나가는 장소. 이 장소에서 곰과 글래스는 폭력적엔 에로티숨을 경험해. [[밀의지식密儀知識] 레버넌트 : 글래스와 곰의 에로티숨]
마지막은 점박이 말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글래스야. 자신의 인디언 스승을 죽인 프랑스인에 대한 응징을 한 후에 절벽에서 말과 함께 글래스는 떨어져. 그리고 눈 폭풍이 오고 말아. 글래스는 점박이 말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말의 배 안으로 들어가. 말의 새끼가 되는 거야.
카메라는 글래스가 말의 내장을 꺼내는 장면을 세세하게 보여줘. 뜨거운 김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 말의 내장. 그리고 그 내장을 밖으로 꺼내는 글래스의 손과 몸. 말의 뱃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옷을 벗고 들어가는 글래스의 몸짓. 그리고 그의 표정. 잔인하지만 그 잔인하다고만 느껴지지 않는 건 말에 대한 경의가 있기 때문이야.사슴-곰-점박이 말까지 이어지는 과정 중에서 글래스는 비로소 밀의지식을 얻는 거야. 대칭적 지식을 말하는 거야. 이 지식에 대해 더 알기 위해서는 서구인의 합리적 이성을 대변하는 피츠제랄드 계열을 따라가 보자.
피츠제랄드는 처음부터 합리적이지. 그리고 계산적이야. 쾌를 얻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항상 계산하지. 그리고 그 계산에 맞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는 분노를 곧장 터트리곤 해. 원한과 증오를 서슴치 않고 표현하는 존재야. 그렇기 때문에 당시 불문율이었던 동료에 대한 배려는 쉽게 버려버릴 수가 있었어. 그래야 쉽게 돈을 얻기 때문이지.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이성을 가진 존재답지.
그런데 그는 종종 절대적인 일신의 모습을 연상시켜. 예를 들어 피츠제랄드는 같이 글래스를 버리고 온 브리저가 죄책감에 괴로워하자 그에게 말해. 브리저는 자신에게 한번 목숨을 빚진 일이 있으니 자기 말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라고 말야. 사실 인디언이 습격했을 때 브리저를 우연히 피츠제랄드가 구해줬거든. 브리저를 구하려는 게 아니라 인디언에 대한 폭력을 행사하고 싶은 거였을테지만 말야.
글래스를 버리고 온 죄책감에 피츠제랄드에게 총구를 겨누는 브리저에게 말하지. '난 네 목숨을 구해줬으니 난 너에게 신이라고 말야.' 이 논리는 기독교 권력이 잘 사용하는 논리야. 너희들의 죄를 사해줬으니 너희는 교회에 순종하라는 논리. 영원한 죄책감에서 해방될 수 없게 죄를 사해주는 논리. 영원히 종으로 만드는 논리. 자본주의에서도 마찬가지지. 인플레이션을 만들어서 빚을 지지 않게 하고나서 영원히 빚쟁이로 만드는 논리. 돈을 풀어서 빚을 탕감해 주는 척하면서 더 노예로 만드는 논리.
그런데 그 신은 원한에 가득차 있는 신이야. 자기의 이기적인 존재성을 위해서라면, 원한에 의한 폭력도 행사할 수 있는 신이지. 마치 니체가 말한 노예의 도덕을 보는 것 같지. 니체의 관점에서 합리적인 노예는 원한에 가득차 있거든. 그래서 개체의 생존을 위해서 폭력을 행사하거든. 사실 이 폭력은 에로티숨한 폭력이 아니라. 에로티숨한 것은 정교한 질서가 있기 때문이야. 그런데 피츠제랄드로 대변되는 근대인의 폭력은 우월한 무기를 바탕으로 한 살생이야. 영화에서 프랑스인들이 자신들의 무기를 가지고 인디언을 공격하는 건 그 때문이지. 살생이야. 어떤 정당한 질서가 없는 폭력은.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에 글래스가 피츠제랄드에게 복수하는 과정은, 상당히 전략적이고 교활해. 지능적이지. 폭력이 그대로 행사해서 살생이 되는 게 아니라 어떤 질서에 맞게 폭력을 행사하는 거야. 마지막에 피츠제랄드의 목숨을 가져가는 건 이 모든 걸 준엄하게 지켜보고 있는 인디언 일행이야.
대칭적 지식에 의하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인 셈이지. 그러나 그 폭력이 정당한 건 충분히 교활한 전략때문이야. 한계를 넘지 않는 전략. 게임이론에 의하면 협력을 위해서는 복수가 필요하다고 해. 그 복수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 되어야겠지. 힘에 기반한 살생이 아니라.
참고도서 : 로버트 액슬로드, 협력의 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