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는 점점 막장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자극과 흥분을 건드리지 않고는 전개가 안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걸 사람들이 원하기 때문이겠죠. 역동적일 수 있겠지만, 강건한 모습은 아닙니다. 흥분에 중독되어 있고 금단현상이 일어나는 건 애착관계때문입니다.
애착관계는 안정된 애착과 불안정한 애착이 있습니다. 애착이라 함은 오랜 기간을 두고 정서적 친밀감을 느끼는 걸 말해요. 어릴 떄 형성되는데, 생존할 역량이 부족한 유아는 자신의 주변과 애착관계를 형성합니다. 주로 엄마가 되겠지요. 생존에 필요한 돌봄을 제공받는 아이는 안정적 애착관계를 형성합니다. 자신의 심리생리적 필요를 떄에 맞춰 반응해줄 때, 안정적인 애착이 형성되요.
반면 불안정한 애착관계도 형성됩니다. 양가형과 회피형이 있는데, 양가형은 엄마가 올 떄 좋기도 하지만 밀어내기도 하는 유형을 말합니다. 그 사람이 없을 때는 그리워하고 좋아하다가도 그 사람이 오면 떼를 쓰는 유형을 말합니다. 회피형은 애착관계 자체를 기피하는 유형입니다. 포기하고 혼자 지내려고 하는 거죠. 그래서 양가형 애착관계에 매여 있는 사람은 회피형 애착관계가 있는 사람에게 끌리기도 합니다. 자신은 혼자 지내지 못하지만 그 사람은 혼자 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뭔가 대단해 보여서 끌리기도 하지만, 사실은 회피형 애착관계에 있을 뿐입니다.
아이에게 있어서 경제적인 부는 결정적인 게 아닐 수 있습니다. 아주 힘들지 않다면 말이죠. 반면 애착관계는 삶의 질을 바뀌어 놓습니다. 안정적인 애착이 없다면 삶에서 항상 흥분을 쫒게 됩니다. 왜냐면 흥분을 쫒는 게 익숙하고 그게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심리생리적 반응에 센서티브하지 못합니다. 밖에서 주어지는 흥분에 항상 노출되어 있어야 합니다. 심심함을 견디지 못하며 마음이 항상 흔들려야 합니다. 날숨과 들숨에 의해 생기는 심박변이도도 낮고 말이죠. 상황에 안정적으로 대처하기 보다는 투쟁과 도피로 대처하는게 더 익숙합니다.
물론 삶에서 흥분이 필요합니다. 그건 삶의 활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각성제를 항상 입에 달고 살 순 없습니다. 그건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삶은 올라갈 떄도 있으면 내려갈 떄도 있는 것인데, 그 리듬이 없기 떄문입니다. 조미료를 잔뜩 친 음식은 아무래도 먹기 힘듦니다. 먹고 나면 깊은 졸음이 옵니다. 삶을 마비시키기 때문입니다.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다시 형성할 필요가 있어요. 애착관계는 자신의 심리생리적 욕구를 엄마가 적절히 반응해줄 때 생긴다고 했어요. 애착관계를 다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싱리생리적 욕구를 알아차림, 지각해야 합니다. 먼저 자신의 몸 감각, 신체지도가 어떤 느낌인지 지각해야 합니다. 내장으로부터 어떤 느낌이, 복부 미주신경을 타고 뇌에 전달되고 있는지 지각해야 합니다. 왜냐면 감정이라는 것도 이 생리적 반응에 대한 예측적 해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게 지각하고 있으면 자신을 알아가고 자신의 욕구에 반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애착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보이차는 400년을 자라도 인간의 키 높이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반면 그 뿌리는 3배 이상 길게 들어가 있다고 하죠. 자기자신에게 뿌리를 내리면 내릴 수록,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