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센 소고기집 <통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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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년 전입니다. 데일리 정보 프로그램 아이템을 찾아 눈이 뻘겋던 어느 날. 청계천 2가 공구상가에서 일한다는 분으로부터 제보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신기하다고까진 할 수 없지만 괴짜라면 괴짜 노인이 하나 있는데, 공구상가 골목의 가게들 간판을 수십년간 만들어 온 분이랍니다. 시덥잖아 보이긴 했지만 아이템도 없던 참이라..... 어슬렁어슬렁 청계천 2가로 가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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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노인이 있다는 곳으로 가는 와중에 제보자 아저씨는 이것 저것.. 전부 다예요..라고 하며 간판들을 가리킵니다. 간판들을 눈여겨보니 이른바 '아이스께끼'체였습니다. 목판에다가 검은색 또는 붉은색 붓글씨로 또박또박 써 넣은, 아이스께끼 아저씨 노점 앞이나 복덕방 간판, 또는 대폿집 앞에 덩그러니 내걸려 있던 그 글씨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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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한 두개라면 아직도 저런 게 있나 하며 싱긋 웃어주고 말 텐데... 수백개의 간판이 거미줄처럼 뻗은 골목 가게가게마다 걸려 있습니다. '용접' '스텐레스' '밀링작업' '각종 공구 팝니다'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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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이 복개되기 전부터 그 일대에서 간판을 만들어 왔다는 이 노인은 무슨 마음으로 이곳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며, 또 돈 기만원이면 쌈박한 간판 내걸 수 있음직도 한데 왜 이곳 사람들은 수십년 동안 아이스께끼체 간판을 달아 왔던 것일까? 이야깃꺼리들이 일단 불면 부는 대로 나오는 비눗방울처럼 있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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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박정희 군사혁명하던 해'에 청계천에 와서 '할 줄 아는 일이 이것밖에 없고, 사람들이 그래도 찾아 주니까' 40년 동안 청계천 골목의 한켠에서, 점포도, 작업실도 없이 그냥 으슥한 길바닥에서 간판을 써 왔다는 노인을 말입니다. 청계천 골목을 줄창 걷다가 간판이 좀 낡았다 싶으면 "다시 써 줄까요?"라고 묻고 답을 듣는 것이 '영업'의 전부라며 너털웃음을 웃는 인상도 좋고, 이야기도 잘 하시고, 모처럼 좋은 사람 만났다 싶어 촬영 이야기를 꺼냈는데 이 할아버지 딱 잘라 거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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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요. 그런 건"
"아니 왜요?"
"방송에 나올만한 일 한 적도 없고, 싫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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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돌아온 다음에도 그곳 생각이 가시지를 않더군요. 대로변에는 이미 현대식 간판이 뒤덮은지 오래..... 할아버지의 '아이스께끼체 간판'은 길지만 좁은 골목 안에 갇혀 있고 현대식 간판의 포위망은 점차 할아버지의 공간을 침식해 들어오는 상태..... 그 가운데 40년간 써 온 플라스틱 물감통에서 붓과 물감을 꺼내어 묵묵히 간판을 써 내려가는 백발의 노인...... 그 그림이 뇌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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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번을 더 찾아가서 빌어 봤지만 대답은 똑같았고, 삼고초려를 해도 안되는 걸 어이하나 싶어서 저는 완전히 포기를 했습니다. 헌데 술자리에서 이 얘기를 전해들은 선배 PD 하나가 또 거길 찾아갔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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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말도 마라. 네가 세 번 갔대며? 할아버지 울더라 울어. 자기는 한 번 안한다면 안하는데 왜 이리 와서 괴롭히냐고."
"울어요? "
"응.... 자긴 평생 자기 결심 바꾼 적이 없대나? 그러면서 눈물 그렁거리는데... 뭐 할 말 있냐? 안녕히 계세요 그러고 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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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열 달쯤 지났을까요.... 예전의 그 제보자 아저씨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할아버지 돌아가신 것 같아요." 하루도 거름이 없이 골목길 물감통 앞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한 달이 넘도록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괜히 맘이 이상해져서 그 자리에 나가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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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없는 플라스틱 물감통은 이미 인근 상가의 쓰레기통이 되어 있었고, 간판에 쓰려던 목재들같은 나무 판자들은 여기 저기 널부러져 발에 채이고 있더군요. 40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할아버지였지만 그와 함께 세월을 지샌 인근 상인들 그 누구도 할아버지의 연락처를 아는 이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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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쉽네요. 꼭 방송을 해보고 싶었는데."
"내 말이 그 말이라. 우리도 무지 설득했다고. 근데 내가 내 고집 꺾는 거 봤소? 이 한 마디에 전부 나가 떨어졌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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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로 뒤덮인 물감통 안을 눈으로 휘젓는데 할아버지가 붓으로 연습을 한 것인지 한 일 (一)자 모양이 여러 개 쓰여진 판자 가 보입니다. 무슨 명필이 휘갈긴 것같이 펄펄 살아 숨쉬는 강렬한 이미지의 한 일자는 물론 아니었지만, 40년을 한결같이 그 골목 그 모퉁이를 지켰던 노인의 고집스런 삶이 뭉툭하게 스며든 것 같은, 그런 작대기들이었지요.
이 할아버지처럼 퇴짜를 맞은 곳이 근처에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을지로 소고기집 통일집이었지요. 저녁 시간대 맛집 프로그램을 개척했노라 우리들끼리 자부하는 <리얼 코리아> 분위기에 딱 맞는 집이라 작가도 한 번, 저도 한 번 찾아가서 방송 섭외를 해 봤는데 너무 딱 잘라 거절해서 무안했던 집이죠. 다니다 보니 ‘KBS SBS MBC 방송 거부한 집’이라고 마케팅을 하는 집도 있던데 이 ‘통일집’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뭐 제 뒤에 어느 유능한 PD가 섭외에 성공하고 방송도 꽤 탄 걸로 압니다. 수요미식회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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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은 못했지만 한 5년에 한 번쯤, 거의 지리를 까먹을만하면 누가 거기서 고기를 산다고 해서 들렀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위치는 헛갈릴지언정 그 고기맛만큼은 항상 일정했다는 느낌이 선명합니다. 된장찌개가 공짜가 아닌 것을 까먹어서 갈 때마다 어 된장찌개 서비스 아닌가? 를 연발할 만큼 드물게 갔을지언정 그 고기 맛이 ‘갔다’거나 ‘변했다’는 인상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이 집은 참 꾸준하구나 배불리 먹고 이 쑤시는데 문득 이 집 간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청계천 할아버지의 그것과 비슷한 필체의 붓글씨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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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 보이지만 가볍지 않고 세련되지 않았지만 꾸밈이 없고 유려하지 않지만 우직해 보이는 글씨체. 제가 만난 할아버지가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 간판을 수십 년 달고 그 아래에서 고기 손질하며 변하지 않는 솜씨로 손님들을 대해 왔다는 것만으로 이 집은 서울의 대표적인 노포(老鋪)라 일컬어지는데 손색이 없다 싶어 고개를 괜히 주억거렸었지요. 청계천 할아버지를 다시 만난 듯 새삼 반가워지기도 했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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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보다 몇 배는 이 집을 자주 들렀고 이 집의 광팬을 자처하는 후배가 이 고집센 노포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이 통일집의 노하우를 그대로 가져오고 심지어 저를 추억에 잠기게 했던 간판까지 똑같이 재현하여 고깃집을 개업한다는 소식을 듣고 싱긋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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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코리아 때 방송 섭외 갔다가 눈물이 핑 돌만큼 매정하게 거절하던 그 주인을 설득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 것이며 손금은 얼마나 닳았을 것인가 생각하기 웃음이 나왔고, 그렇게 고집센 주인이 일단 오케이를 했으면 어디에 열든 그 자존심은 지킬 것이기에 녀석의 고깃집이 성황을 이룰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은 탓입니다. 돈 잘 벌면 좀 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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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통일집이 1호선과 7호선이 맞닿는 가산디지털단지역 4번 출구 리더스타워빌딩 지하에 그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문을 열었습니다. 전화번호는 837-0105..... “방송 같은 거 안해요. 뭐할라고 뜨내기들 들끓으라고 방송을 해? 가 봐요.” ..... 아 그때 고집센 주인의 타박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우직하고도 꾸준한 소고기 맛 한 번 즐겨 보시기 바랍니다.
리더스타워의 통일집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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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냐구요? 네. 지금까지 광고였습니다. 김형민 페이지 보고 왔다고 하면 소주 한 병 정도는 서비스로 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