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외면

sanha8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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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0월 25일 그들의 외면

<응답하라 1997> 이라는 드라마가 대인기를 구가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 97년에 관한한 아련한 추억 따위는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뭐가 다르냐 싶은 심경인데 또 드라마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아하 저때는 그랬지 싶은 소품과 풍경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미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먹고 살기 바쁜 때였으니 그것들을 무심히 지나쳤을 뿐, 그 즈음 예민한...

촉각을 곤두세웠던 이들에게는 1997년이란 가늘게 눈을 뜨고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시선을 15도 위로 향한 채 그때는 그랬지 추억에 잠길 수 있는 시기의 중심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요즘 나는 자꾸 1997보다는 숫자가 열 앞서는 1987이라는 숫자가 아른거린다. 기분 나빠지는 건 <응답하라 1997>과는 달리 돌아보기조차 암담한 기억이 그 숫자에 얽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기억을 응축시켜 보여주는 사진이 아래의 사진이다. 한때 민주화 동지로서 어깨 걸고 군부독재에 맞섰고 결국은 차후 대한민국 대통령을 차례로 지냈던 두 사람이 어떠한 상황에 있나를 절묘하게 보여 준 사진이다. 이 사진은 1987년 10월 25일 고려대학교 교정에서 찍혔다.

조선일보에 연재되던 고바우 4컷 만화 중 하나는 이랬다. 온 동네 집마다 “죽 쒀서 개 줄라” 소리가 요란하다. 동네 개 두 마리가 만나서 너 죽 먹었냐? 아니 하는 문답을 교환하고는 골똘히 생각한다. “대체 누굴 줬다는 소릴까.” 불에 손 데고 허벅지 데어 가며 진땀 흘리며 마련한 죽을 웬 똥개가 포식하는 상황이라면 죽 쑨 사람들 가슴에는 바주카포 포탄 구멍이 뚫릴 것이다. 그것도 원래는 죽을 쑤려는 게 아니라 개 한 마리를 때려잡은 뒤 푹 삶아 된장을 발라버릴 심산이었는데, 그 문제의 개가 삶아지기는 커녕 펄펄 살아서 남이 애써 끓인 죽을 가로채 그릇 바닥이 뚫어질세라 박박 긁어 먹었다면 이 얼마나 시일야방성대곡이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 사진은 그 사실을 축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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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두 사람은 누차에 걸쳐 단결과 승리를 약속했다. 반드시 단일화하겠다고 몇 번씩이나 공언했고 그러지 못하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는 언명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보다 더 명확한 단일화의 원칙이 있었다. “나로 단일화돼야 단일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따르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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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생님이, 우리 총재님이 단일화 후보로 나가는 것이 역사의 순리요 상식이라고 주장했고 그를 통해 별별 논리들이 동원됐지만 결국은 위의 “내가 돼야 단일화” 원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단일화 압박은 지금의 상상 이상으로 거셌다. 단일화 ‘시한’까지 정해 놓고 둘에 대한 압박이 전개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회고에 따르면 동아일보 사장까지도 담판장의 중재자로 나설 정도였다. 불안했지만 믿음은 확고했다. “그래도 저 사람들은 단일화할 거야. 똑똑한 사람들인데.”

그 시한은 9월 29일이었다. 하지만 죽 끓는 시끄러움 속에서 둘은 이렇게 발표한다.

“오늘 우리 두 사람은 2시간 가까이 회동했으나 합의된 사상은 솔직히 없다. 두 사람이 후보 단일화에 합의하지 못한 데 대해 국민과 당원들에게 죄송하다. 그러나 각기 오늘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파악했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더 숙고하고 측근과 깊이 있는 검토와 상의를 해서 필요하다면 다시 만나 논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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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의 단일화 결렬 선언이었다. 일단 내 갈길 가는 가운데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파악) 네가 두 손 들고 들어온다면 (깊이 있는 검토와 상의) 다시 만나 논의하겠다는 것이 결국 둘의 얘기였다.

둘 중 누가 되든 단일화만 될 것 아니냐는 사람들보다는 둘 중 내가 지지하는 쪽이 후보가 돼야 한다는 이들이 월등히 많았던만큼 사활을 건 편 가르기가 시작됐다. 그러는 사이 지지와 충성은 혐오와 적대감으로 전화되는 수가 많았고 장담컨대 정권은 그 틈을 파고들어 양쪽 모두의 등을 떠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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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가 바위처럼 굳을수록 그 바위는 단일화의 숨통을 틀어막았고 서로의 약점을 들추려는 ‘아이스께끼’ 같은 작태는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바위로 만들었다.

1987년 10월 25일 고려대학교에서는 좀 긴 이름의 집회가 열린다. “거국중립내각쟁취 실천대회"였다. 이미 후보가 될 두 사람이 단일화 논의를 중단한 마당에 선거를 관리할 ‘거국 중립 내각’ 은 사실 그 힘이 많이 달리는 이슈이기는 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김대중 김영상 두 거물이 나란히 참여했다. 좌석도 바로 옆으로 배치됐다. 그리고 이 사진이 나온다.

당시 집회에서 재미를 본 것은 김대중이었다. 대중 연설 능력으로 따지자면 탁구공과 농구공의 차이가 있는 둘이었기에도 그랬겠지만 이미 재야는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 (아 이 유구한 역사적 단어의 시원이라니)로 기울어 있었고 이날 참석자들은 김대중의 연설에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고 김대중은 무개차를 타고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김영삼은 입 다물고 승용차로 총총히 귀가했고. 3일 뒤 10월 28일 김대중은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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