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12월 26일 트루먼 가다
우리나라 역사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미국 대통령이라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나라면 이 사람을 꼽겠어. 해리 S. 트루먼. 제 33대 미합중국 대통령. 루스벨트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재직하던 중 루스벨트 대통령이 급서하면서 별안간 미합중국 대통령이 된 사람이었지. 원래 그가 부통령에 지명된 자체가 “저 촌놈은 우리가 쉽게 갖고 놀 수 있을 거야.” 하는 민주당 정치인들의 합의 아닌 합의 때문이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유능하고 샤프하다는 평과는 좀 거리가 있었던, 미국에서는 시골로 치부되는 미주리 주 출신 정치인이었지.
별안간 루스벨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백악관으로 달려갔을 때 엘리노어 루스벨트 여사에게 그는 이렇게 물었다는군. “뭘 도와 드려야 할까요.” 그러자 엘리노어는 이렇게 대답했대. “제가 물을 질문입니다. 앞으로 골치 아픈 일이 많으실 테니까요.” 그제야 해리 S. 트루먼은 자신의 위상에 대해 한 번쯤 돌아보고 경악하지 않았을까. 내가 Vice를 땐 프레지던트가 된다고??? 그는 그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지. “달과 별들이 와르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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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겁결에 된 대통령이었지만 그는 중대한 결정을 많이 내려. 일본에 원자탄을 퍼부으라는 명령을 내린 것도 그였고, 마샬 플랜을 가동시켜 빈사 상태의 유럽 국가들에게 기사회생의 기회를 제공한 것도 트루먼이었으며 이스라엘 건국을 지지하여 다비드의 별을 팔레스타인에 휘날리게 하는 데에도 기여했지. 1948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재선에 도전하지만 여론조사 결과는 극히 불리했고 민주당은 내부 분열까지 있어서 별 기대 않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음날 결과는 트루먼의 극적인 승리로 나타났지. 그 재선 임기 기간에 발생한 게 한국 전쟁이었지.
트루먼은 욕쟁이였어. 특히 ‘개새끼’ 즉 Som of Bitch를 입에 달고 살았다지. 그는 한국전쟁 소식을 듣자마자 이렇게 외쳤다고 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개쉐이들을 막아야 한다. 하느님께 맹세코 저 개쉐이들이 댓가를 치르도록 해 주겠어.” 그는 의회가 참전을 꺼릴 것을 우려해서 한국전쟁 참전이 UN의 깃발 아래 행해지는 경찰 행동(police action)이라고 핑계를 대서 의회의 승인도 없이 미군을 한반도에 투입했지. 중공군 개입으로 전세가 위태로왔을 때 한국을 포기해 버리자는 말도 많이 나왔지만 그렇게 못한다고 버텼고 맥아더가 원자폭탄을 퍼붓고 방사능 물질로 만주를 덮어버리자는 턱없는 주장을 하는 등 무리한 행동을 일삼는 걸 보고는 단칼에 그 직위를 날려 버리기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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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은 트루먼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 “솔직히 난 당신을 깔보았습니다. 그리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신 대통령이 된 것이 싫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 누구보다 서구문명을 잘 지켜내셨습니다.” 처칠의 평가와는 별도로 어쨌건 트루먼은 대타 출전해서 홈런 때린 격으로 2차대전이라는 미증유의 전쟁의 마무리와 냉전이라는 또 다른 시대의 개막을 모두 수행했고 지금도 우수한 치적을 남긴 미국 대통령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고 해. 트루먼은 책상에 이런 글귀를 적은 명패를 갖다 놨다지. “The Buck Stops here” 즉 모든 건 내가 책임진다는 식이었는데 자본주의 국가들의 수장격이라 할 미 합중국 대통령으로서는 그 책임을 훌륭히 다했다고 봐야겠다. 그런데 그가 가장 확실하게 책임을 진 대상은 직무보다는 아내가 아니었을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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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교회 주일학교에서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여섯 살 때였어. 당시 아내 베스는 다섯 살이었는데 트루먼에 따르면 “첫눈에 반했다.” 나이가 아무리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싶지? 놀랍게도 트루먼은 그가 88세로 죽을 때까 오직 한 여자 베스만 마음에 담았던 기록적인 순정남이었어. 여섯 살 때 이미 나는 너와 결혼할 거라던 이 맹랑한 꼬마는 나이 서른 다섯이 돼서야 그 꿈을 이루게 되는 결혼을 하고도 계속 연애 편지를 주고 받는 닭살의 최고봉을 시전한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좋아해도 저렇게 좋아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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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혼도 편지로 했지. 이렇게. “"나는 비록 가진 게 없지만 당신을 미치게 사랑하오. 언제 어디라고 말만 하시오. 그때 그곳에서 우리는 결혼할 거요.” 결혼하고 남성복 가게를 차렸다가 쫄딱 망했지만 트루먼은 끄덕없었어.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라고 트루먼이 아무리 편지 공세를 편 들 아내가 멀뚱멀뚱했다면 그렇게 수천 통의 편지가 오가지는 않았겠지. 베스도 만만찮은 닭살 우먼이었거든. “"어젯밤 자는데 크고 검은 벌레가 침대 커버 밑에 있었어요. 당신이 벌레를 잡아주기를 바라기 때문만은 아니지만, 나는 당신이 그리워요." 삼수갑산에 있더라도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저 아내의 어리광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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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이런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어. “"나는 정말 머리카락을 자르고 싶어요. 왜 그렇게 반대하죠? 좀 이상하게 보이더라도 내 머리는 아주 빨리 자라서 금세 원상태로 돌아온다니까요!" 읽기만 해도 코맹맹이 발음이 들릴 듯한 투정에 남편의 대답도 가관이다. "내 생각과 상관없이, 그저 당신이 행복하길 바라오. 당신은 머리가 짧아도 여전히 아름다울 거요." 이런 편지를 쓰다가 ”개쉐이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으시오. 해병대 출동!“을 명령하기도 했겠지. 실제로 미합중국 대통령께서는 포츠담 회담 와중에아내의 샤넬 향수를 구하기 위해 암시장 잠입도 서슴지 않으셨다고 하니 ”트루먼의 사랑 신기하고 놀라워.“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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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미국 대통령이다보니 어쩔 수 없는 세계사의 흐름이 편지 속에 묻어나기도 하지. 트루먼 대통령은 그들의 결혼 기념일 직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골치 아파했다. “워싱턴 공항은 주 장관들과 국방장관, 육, 해, 공군 장군들로 북적거렸소. ..... 회의는 대단히 성공적이어서 군사를 동원하지 않고도 일이 잘 될 것 같소. 그리스와 터키가 우리 뜻대로 된 후로는 상황이 그리 나쁘지는 않소. 최선이 되기만 희망하고 있어요.” 그들의 결혼 기념일은 6월 28일이었고 그날을 위해 이벤트나 선물 등등을 고심하고 있는데 뜻밖의 소식이 날아든 거였지. 바로 한국전쟁.
해리 트루먼은 매우 ‘귀여운’ 남편이었던 것 같아. 개쉐이 개쉐이 소리를 예사로 하는 직선적인 성격이지만 아내에게 꺼뻑 죽을 뿐 아니라 외동딸에게도 지극했던 남자였거든. 성악을 했던 딸의 공연을 보고 한 평론가가 혹평을 하자 대통령님이 직접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였단다. “방금 당신의 형편없는 평론인지 뭔지를 봤소. 당신 날 만나게 되면 새로운 코가 필요할 거고 눈은 시퍼렇게 될 거요.”
세계를 뒤흔드는 미국 대통령치고는 매우 어울리지 않는 행태, 하지만 딸의 어머니로서는 이이가 왜 이래 하고 꼬집는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깨소금 맛에 어쩔 줄 모를 남편의 결기. 하기사 베스도 영부인으로서 격식 따지고 권좌를 향유할 품성은 못됐어. 그녀는 미국 역사상 가장 조용한 퍼스트 레이디로 통해. “영부인으로서 내가 하는 일이란 남편 해리 옆에 조용히 앉아서 모자를 제대로 썼나 확인하는 일이라오.” 라고 얘기했던 것처럼 남편 옆에 있는 것 이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
역사적으로 큰 발자취를 남기고 우리 역사의 물줄기도 바꿨던 미합중국 대통령. 자신의 책상에 “책임은 여기에서 멈춘다.”고 써 놨던 트루먼 대통령은 퇴임 후 경호원도 없이 자가운전으로 미주리로 돌아가면서, 또는1972년 12월 26일 그 기나긴 사랑을 끝내던 순간에 아마 베스를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리며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Love stops here" 사랑은 이 사람에서 멈춘다고 말이지.